[횡설수설/송문홍]문자·활자의 날

  • 입력 2005년 6월 9일 03시 05분


다치바나 다카시(65).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범법 행위를 파헤친 논픽션으로 유명해진 일본 언론인이자 평론가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10권쯤 소개돼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의 엄청나게 다양한 관심 영역이다. 우주론에서부터 임사(臨死)체험, 뇌(腦)연구, 일본공산당 연구, 물리학, 원숭이학, 현대교양론 등 온갖 종류의 책을 쓴 것을 보면 이 사람의 뇌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그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최소한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독파한 뒤 본격적인 취재에 나선다.

▷바로 그 다치바나가 꾸준히 제기해 온 문제 중 하나가 ‘지적(知的) 망국론’이다. 일본 교육 전반의 수준 저하가 심각해 더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몇 해 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도 냈다. 특히 그는 ‘안 읽고, 안 쓰는’ 세태를 지적 위기의 큰 원인으로 보았다.

▷다치바나의 주장이 공명(共鳴)을 얻은 것일까. 일본의 여야 의원 286명이 ‘문자·활자문화 진흥법’ 제정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니 말이다. ‘문자·활자의 날’을 만들고, 학교에서 언어력 향상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라고 한다. 읽기와 쓰기 능력은 곧 사고력, 창의력과 직결된다. 창의력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나라의 국력(國力)도 올라간다. 일본 의원들이 이 문제를 개인에게 맡겨 두지 않고 국가적 과제로 삼은 이유일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로 흘려들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지도자부터 우리나라의 ‘지적 불황’이 일본보다 덜하다고 볼 근거를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신문명 이기(利器)의 보편화는 문자문화, 나아가 사고(思考)의 경박단소(輕薄短小)를 부르고 있다. 교육이 그 틈새를 메워 줄 형편은 더욱 아니다. 지금 정부와 국회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을 보고 있자니 문자 이탈, 활자 이탈, 교양어(敎養語) 실종에 따른 지적 후진화를 막을 길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