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하는 어린이라면 반찬 투정이고, 사춘기 청소년이면 일종의 반항이다. 성인이라면 다이어트 선언일 수도 있다.
목적을 갖고 먹지 않는 것. 단식(斷食). 누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다른 옷을 입는다.
1983년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이어진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23일간 단식은 생명을 건 민주화 투쟁이었다.
그러나 그 단식은 한동안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신군부의 보도통제 때문이었다.
단식 사흘째인 5월 20일. 동아일보 2면 정치 가십난은 암호문 같은 기사로 YS의 단식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최근의 ‘정세 흐름’과 관련, 정가 일각은 19일부터 신경을 쓰는 눈치.”
YS는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이란 회고록에서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최근의 정세 흐름이 과연 무엇인지 일반 국민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른 신문들은 그런 ‘말장난’을 할 용기마저 없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의 단식은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라고 희한하게 표현되기도 했다.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권익현(權翊鉉) 민정당 사무총장을 연일 YS에게 보내 출국을 종용했다.
“단식만 끝낸다면 미국 유럽 일본 어디든 나갈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권익현)
“나를 해외에 내보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YS)
“그게 무엇이냐.”(권익현)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YS)
단식 23일째인 6월 9일. YS는 ‘단식을 마치면서’라는 글을 통해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중단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10일자 동아일보 사설.
“언론은 그의 단식을 지켜보면서 20여 일 동안이나 그저 ‘정치 관심사’와 ‘정치 현안’이란 막연한 표현을 써 왔을 뿐이다. 우리는 언론의 정상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비정상의 ‘유언통로(流言通路)’를 확산시켜 온 바를 자성한다.”
YS의 단식은 극한적 자해(自害)의 비정상적 방법으로 당시 한국 정치의 비정상을 고발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때의 비정상은 많이 사라졌지만 단식이란 투쟁 수단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집권 여당의 분열을 반대하는 중진 의원의 단식,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도입을 관철하려는 제1야당 대표의 단식,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여당 의원의 단식,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야당 여성 의원의 단식 등등.
21세기 한국 정치의 이 단식 투쟁들은 어떤 비정상들을 고발하고 있는 걸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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