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노동부는 외환위기 직후 실업률이 6.3%이던 1999년 기준의 높은 보험료율을 실업률이 절반으로 떨어진 뒤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렇게 6년간 거둬 쌓인 돈이 지난해 말까지 8조4485억 원이다. 2001년 실업률이 3%대로 떨어지면서 필요액을 지급하고도 매년 1조 원 이상 남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나태와 무사안일 때문에 근로자의 월급봉투와 기업의 경영 재원에서 생돈이 빠져나간 것이다. 이 과다 징수분 수조 원을 강제로 떼이지 않았다면 근로자의 소득과 소비, 기업의 투자 여력이 늘어 경제 활력에 기여했을 것이다.
한 해 지출 규모의 네 배 가까운 돈이 적립돼 있는데도 수혜 대상 근로자의 24%가 행정적 누락 때문에 제때 지원받지 못했다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누구를 위한 고용보험인가. 그런가 하면 적지 않은 산재환자들이 요양기간의 제한이 없다는 허점을 이용해 부당하게 장기간 산재보험기금을 타가는 사례들도 방치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평균임금의 70%까지 받는 ‘나이롱환자’가 상당수라고 하니, 누가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고 일자리로 복귀하려 하겠는가.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보장과 복지 대책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를 마련하고 담당 공무원을 증원해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고 퍼주기식으로 운영한다면 복지국가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회보장 지출을 아무리 늘려도, 꼭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받아 직업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는 한 사회 양극화도 해결되기 어렵다.
사회안전망은 정부조직이나 키우고 복지제도 담당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실히 일해서 꼬박꼬박 보험료 내는 근로자와 기업에는 필요 이상의 부담을 안기면서, 정작 취약 계층은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는 이중의 죄악이다. 이런 점을 수술하지 않은 채 개혁을 외치는 정부를 누가 신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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