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터뷰 도중 산악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한 박영석(朴英碩·42·골드윈코리아 이사) 씨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외국 신문과 잡지에서 박 씨의 기사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우쭐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올해 초 대만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초청을 받아 환대받았다는 그는 “미스터 박이 작위를 받아 서(Sir·경)가 됐나요”라고 물었다.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86) 경(卿)이 뉴질랜드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것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귀족이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하여간 엄청난 축하를 받았겠죠, 부러워요.”
기자는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지난달 1일 북극점 도달로 산악그랜드슬램의 쾌거를 이룬 박 씨는 국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부터는 아직까지 ‘한번 만나보자’는 연락도 받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축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극 원정에서 귀국한 지 나흘째인 지난달 16일 박 씨와 원정대원들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초청받아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를 만났다.
그런데 오전 11시에 만나 녹차 한잔 마시며 총리와 마주한 시간은 불과 5분여.
“추웠지요? 고생 많았어요”라고 격려한 이 총리는 “청와대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급히 자리를 떴고 박 씨와 원정대원들은 기념품 하나씩을 받아들고 나와 인근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 총리 접견을 위해 오전 일찍부터 서두르느라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
최근 뉴질랜드를 방문한 박 씨는 힐러리 경으로부터 ‘마이 주니어(나의 아들 또는 후계자)’라는 호칭을 들으며 환대를 받았다. 5달러짜리 뉴질랜드 지폐에는 생존 인물인 힐러리 경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자국 산악인에 대해 자긍심이 높다. 박 씨가 혹시라도 산악인을 대접해 주는 뉴질랜드에 둥지를 틀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전창 스포츠레저부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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