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음주측정기 도입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8분


“자기 소유 차량을 스스로 운전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대도시 유흥가 주변을 중심으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은 음주운전자의 음주량까지 측정할 수 있는 감지기를 도입해 일선에 보급했습니다.”

신군부의 강압통치가 서슬 퍼렇던 1980년 6월 11일. ‘알코-센서’라는 영어명이 선명한 생소한 장비가 신문 방송을 장식했다. 성인 남자의 손아귀에 간신히 잡힐 정도의 물건에는 작은 파이프가 붙어 있었다. 운전자가 입김을 불어넣으면 혈중 알코올 함량이 숫자로 표시된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음주운전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1979년 한 해 동안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06건. 150명이 숨지고 1711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건수로만 따져도 한 해 만에 46%나 급증했다. 경제 발전이 가져다 준 환영할 수 없는 부산물이었다.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발표를 메모하던 기자들도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 새로운 장비가 신문 사회면을 심심치 않게 메워 주는 단골손님이 되리라는 것을….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음주단속이 가져다 준 웃을 수 없는 만화경이 수없이 펼쳐지고 있다.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바꾼 남녀 회사 동료가 사실을 부인하다 법정 구속되고(2004년 5월), 음주운전자가 음주 사실을 감추기 위해 도로변의 풀잎을 뜯어먹었다가 구토 증세를 보여 위세척을 받았으며(〃), 단속에 걸린 현직 변호사가 ‘내가 누군 줄 아느냐’며 단속 경관의 머리를 들이받았다(2004년 6월).

이름난 여성 탤런트가 음주 측정을 거부하고 손톱으로 경찰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가 불구속 입건돼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2004년 10월). 2005년 3월에는 만취한 40대가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관을 차에 매단 채 도주하다 떨어뜨려 숨지게 했다. 잊을 만하면 재발하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때론 가슴 아프고 때론 어이없는 사연들에도 불구하고, 통계로 산출하기도 어렵지만 조그만 음주측정기가 25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인명을 위험에서 지켜 주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으로 이 장비는 ‘대리운전’이라는 직종을 탄생시켜 경기 침체로 어깨가 처진 수많은 아빠들에게도 힘을 보태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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