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현인택]전쟁과 데모사이드

  • 입력 2005년 6월 13일 03시 09분


6월은 호국(護國)의 달이다. 현충일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6·25전쟁을 겪은 우리는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상을 실감하는 국민이다. 전쟁의 상흔이 큰 만큼 그러한 비극이 이 땅에서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평화에 대한 염원도 크다. 그러나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평화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국가 간 정치적 합의가 일시적 평화를 낳을 수는 있으나 영속적 평화는 보다 근본적 처방 없이는 이루기 힘들다.

▷20세기 전쟁의 역사를 보면 새삼스럽지는 않다 해도 놀랄 만한 사실이 발견된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6·25전쟁, 베트남전, 그리고 크고 작은 전쟁 때문에 약 400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희생자 속에 상당수의 민간인이 포함돼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쟁보다 더 참혹한 실상이 있다. 데모사이드(democide·시민학살)이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루돌프 J 러멜 교수에 따르면 정권에 의한 자국민 대량학살인 데모사이드는 주로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의 절대 권력에 의해 자행된다. 20세기에만 데모사이드로 약 1억 7000만 명의 인류가 희생됐다(이상우 저 ‘러멜의 자유주의 평화이론’). 이는 20세기 전쟁 희생자의 4배에 달하는 숫자다. 극단의 절대 권력이 극단의 대량학살과 전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던 평화주의자 러멜은 절대 권력으로부터의 탈피가 데모사이드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았다. 시민의 기본권과 정치적 권한을 보편화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신장만이 시민학살을 막는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민주화하면 할수록 시민학살의 가능성이 낮아질 뿐 아니라 전쟁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비폭력과 전쟁 반대를 외치는 이상주의적 평화주의나 좌파 평화주의와는 다른, 훨씬 적극적 평화주의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북한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그 해결책을 시사해 주는 얘기다.

현인택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국제정치 thyu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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