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현아]부동산정책, 진단부터 다시 하라

  • 입력 2005년 6월 13일 03시 09분


또다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일부 지역이라고는 하나 그 정도가 심하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는 ‘네 탓’ 추궁이 한창이다. 중앙정부의 정책 탓, 지방정부의 비협조 탓, 중개업자들의 투기 조장 탓, 언론의 탓, 투기세력의 탓…. 그러나 이러한 책임 전가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단지 이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속만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요즘 국민은 적지 않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일부 지역의 주택 가격 폭등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투기세력을 잡겠다고 시행한 정부 정책이 서민들의 주머니부터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민도 주택 보유자들이다. 소유한 주택의 가격이 싸거나 규모가 작을 뿐이다. 최근 부동산 보유세 부담은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모두 적용된다. 그런데 소득의 양극화 속에서 서민들의 늘어난 보유세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다.

그뿐인가? 은행권의 주택담보비율 통제 강화 조치는 담보가치가 하락한 서민들의 주택부터 적용된다. 서민들은 당장 대출금을 상환해야 할 판이다.

반면 부자 동네에는 각 금융기관들이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줄 수 있게 됐다며 대출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 버려 주택담보비율을 낮춰도 추가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강남이나 경기 성남시 분당지역에서는 매물을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르는 게 값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싼 주택이나 소형아파트가 많은 지역은 반대로 사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단독이나 연립주택, 소형 아파트 가격은 이미 작년부터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가격 억제 정책의 효과가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며 반대로 오히려 서민 주택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더 강한 대책을 써야 하는 것인가?

정부는 또다시 부동산 시장을 잠재울 극단의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아마 이번에는 공급 확대 정책이 일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급 확대 정책은 최소한 5년 이상이 되어야 가시화된다. 따라서 이번에도 역시 단기적인 수요 억제책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모든 부동산 수요를 투기 수요로 간주하는 정책 접근은 안 된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는 ‘투기적 수요’와 ‘실수요자’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금 능력이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이 자꾸 투기세력을 대상으로 수요를 억제하고 세금 부담을 강화하면 결국 자금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먼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이나 수술이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약효가 더디게 나타나는 경우이다. 병의 원인이 고질적인 것이어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치료해야 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회복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경우는 바로 오진(誤診)을 한 경우이다. 병의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다.

자꾸 더 독한 약을 투여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너무 심한 고통을 잠시 덜어주게 할 때뿐이다. 정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대책도 자꾸 강도를 높여 가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죽지 않는다고 계속 강력한 살충제를 뿌려 보라. 언젠가 바퀴벌레는 죽겠지만 그 전에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 벌레들과 식물이 먼저 죽게 되는 법이다.

정부는 정책의 강도를 높이기 전에 증상에 대한 진단부터 다시 해야 할 시점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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