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송상기]세계지역연구 국책기관 만들자

  • 입력 2005년 6월 14일 03시 20분


‘글로벌화’ 혹은 ‘세계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 기업, 대학 등에서 부르짖는 말이지만 이젠 많이 식상해졌다. 이 구호는 대개 세계에서 통용되는 시스템 개혁과 세계 일류를 지향한다는 품질 개혁에 국한되어 온 측면이 있다. 세계 10대 교역 국가에 오르기까지 이런 구호는 필요했고, 앞으로도 국가경쟁력의 차원에서 핵심적인 수사(修辭)가 될 것이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면 먼저 세계를 알아야 한다. ‘제대로’ 말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문민정부 시절 여러 대학에 국제대학원이나 국제지역원이 생겨났다. 이 대학들은 영어를 잘하고 경제학이나 경영학에 대한 지식을 갖춘 통상전문가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세계 각 지역에 대한 개별 언어를 습득하고 현지에서 연구를 한 지역전문가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교육목표를 세우고 커리큘럼(교과 과정)을 짰다. 하지만 이런 대학원이 생기고 10여 년이 지난 요즘 ‘지역연구’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통상전문가’를 키우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졸업생들의 진로와 학내에서의 이해관계 등 여러 이유로 내려진 불가피한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부자나라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에 제대로 된 세계지역연구센터가 없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가. 세계무대를 제대로 알아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최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글로벌 디자인’이라는 것은 세계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그 좌표를 달리한다. 세계 곳곳의 이면에 흐르는 문화적이고 인류학적인 심층 파악 없이는 결코 복잡한 국제 문제를 이해하거나 풀어 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

한 국가, 한 지역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얼까.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의 다양한 학문간 연구가 필요한 작업이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지역학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어느 때보다도 깊이 있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1, 2년에 그치는 단기 과제이고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연구기간이 끝난 후의 생계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지역에서 장기간 연구를 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방치해 지역 연구 활동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당 지역의 지역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려 하는 후학의 공동화(空洞化)도 이미 감지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처럼 ‘세계지역연구원’이라는 국책 연구기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제언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세계 각 지역에서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문학, 철학 등을 전공한 지역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연구를 펼칠 장(場)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나 대기업이 원하는 지역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깊이 있는 결과물을 제공할 ‘싱크탱크’는 꼭 필요하다. 대중을 위한 각 지역에 대한 교양서적도 이를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야 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국가의 외교정책이나 기업의 해외전략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문화 영역에서의 창조적 시너지 효과는 물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톨레랑스의 에토스’(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도 풍부해질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효과를 거둔다면, 한국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디자인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송상기 고려대교수·서어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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