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존치?…기로에 선 60인의 사형수

  • 입력 2005년 6월 15일 16시 53분


최근 국회의원 175명이 발의한 ‘사형폐지특별법’이 국회에 정식 상정돼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사형제 폐지법안’을 둘러싼 논란도 다시 커질 전망이다.

지난주 ‘연쇄 살해범’ 유영철의 사형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의 사형수들은 총 60명으로 늘어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인 1997년 12월30일 한꺼번에 사형수 23명의 사형 이후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누가 사형 선고를 받을까.

이들 사형수는 전원 살인범죄자들이다. 이중 48명은 2명 이상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3명 이상 살해자는 21명, 10명 이상 살해자는 유영철을 포함해 3명이다. 1명을 살해한 경우도 유괴살해나 시신훼손, 강간살인, 존속살해 등을 저지른 경우다.

사형수들은 대부분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영철도 법정에서 “너무 일찍 붙잡혔다”고 말했다. 자수했는데도 사형이 선고된 경우는 없었다.

지난 2003년 자신과 여자친구의 신용카드 빚 7000만원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어머니와 할머니를 목 졸라 살해하고, 형을 흉기로 15차례나 찌른 뒤 아버지까지 유인해 죽이려다 실패한 패륜아들은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그는 범행 후 여자친구에게 “오늘 식구들 작업했다가 실패했어”라고 태연히 이메일을 보냈다.

2002년 9월에는 부녀자만을 골라 강도·강간을 일삼으며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3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30대 살인범의 사형이 확정됐다. 그는 살해한 피해자를 승용차 트렁크에 3일간 싣고 다니면서 가족과 나들이를 하고 외식을 즐기는 등 도덕적 의식이 마비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2월에는 일가족을 한꺼번에 살해한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40대 김모 씨는 10년 동안 의붓딸(20)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는 아내 집을 찾아가 잠자던 일가족 4명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다. 김 씨의 친아들과 친딸도 함께였다.

2001년에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내연녀와 짜고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한 뒤 내연녀까지 살해하고 자신의 아내도 살해하려다 중상을 입힌 30대 남자에게 사형이 확정됐다.

1996년 귀가하던 술집 여주인을 납치해 산 채로 땅에 묻어 살해한 ‘막가파’의 두목도 사형 대기 중이다. 같은 해 여름 남태평양의 참치 잡이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한국인 선장을 비롯해 조선족, 인도네시아 선원 등 11명을 살해해 수장한 해상강도 살인사건의 주범 역시 사형이 확정됐다.

종교 문제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교주의 지시로 영생교를 이탈하거나 비방한 신도 6명을 살해해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다. 92년 말 사형이 확정돼 사형 대기자로 12년8개월을 보내고 있는 한 사형수는 부인이 종교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한다며 해당 종교회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케했다.

◇적극적인 교화 노력 있으면 무기징역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교화의 기미가 있거나, 피해자와 화해를 하면 사형을 선고하지는 않는다. 또한 범행 당시의 피고인의 심신 상태도 체크한다.

지난 2월 대법원은 내연녀 폭행 혐의로 자신을 체포하려던 경찰관 2명을 살해한 이모 씨에게 “교화의 여지가 남아 있다”며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2001년에는 부모를 토막 살해한 뒤 시신을 버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 명문대생 이모 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씨가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로 인해 범행당시 극도의 불안감과 피해의식 등 심신장애 상태였던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1975년 ‘인혁당 사건’처럼 이른바 사상범 사형수는 현재 단 한 명도 없다. 여성사형수도 없다. 원래 2명의 여성사형수가 있었으나 김대중 정부 때 모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사형 집행 미뤄지고 감형 늘어나

최근 들어 사형에 대한 감형이 늘어나면서 사형 선고 역시 줄고 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1996년에는 23명, 2000년 20명, 2004년 8명으로 감소했다.

얼마 전 신생아를 납치하고 친모를 살해한 범인들에게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살인의 주범인 김씨와 박씨는 검찰의 구형한 사형이 적정하다고 판단되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법원으로선 둘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 한다”고 밝혔다.

사형 선고 자제 분위기 속에서 국회에 상정된 ‘사형제폐지 법안’의 처리 결과도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사형제의 존치를 원하고 있어 처리가 쉽지는 않을 전망.

김진표 부총리는 지난 10일 “아직도 전체 국민의 2/3 가까운 국민들이 사형제 폐지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정치권과 정부의 논의가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유씨 등 사형수들의 사형집행은 더 미뤄질 전망이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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