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습니다. 도서관 유리창을 깨고 “학우여! 모여라”를 외치던 운동권 투사들을 우리 모두는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국가공인 ‘조폭’이었던 ‘백골단’에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던 친구의 의연함을 잊을 수 없어 애꿎은 소주와 막걸리를 축내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시골 부모님이 눈앞에 어른거려, 장래에 커다란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몇 날이고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러 지방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자취방 얻는 데 보태 쓰라며 자신의 통장과 도장을 건네주던 친구, 수배를 당해 명절 때도 집에 못가는 동기를 위해 부모님과의 메신저 역할을 묵묵히 해 주던 친구, 이 모든 친구들의 가슴 속에 담겨 있던 민주사회를 향한 소박한 열망. 우리들의 1980년대는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전두환 소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야 할 군대를 빼내 육군본부로 진격시키고 민주화를 요구하던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살육한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사모하는 모임이 생겼다니 실로 격세지감입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결코 ‘29만 원짜리 싸구려 보수’와 친해질 수 없습니다. ‘역사의 가정(historical if)’이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만일 ‘80년 광주’가 없었다면 우리 세대의 진로 또한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두환 소동’보다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386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입니다. 이제 386은 민주주의를 향한 희생, 헌신, 열정, 패기의 상징어가 아니라 무능, 아마추어, 독선, 부패, 거짓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화신이 돼 버렸습니다. ‘이광재의 손가락’은 우리 세대의 영욕(榮辱)과 명암(明暗)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단지(斷指)가 병역 기피를 위한 의도적 자해행위로 여겨지는 지금, 국민들은 386 정치인을 조롱 섞인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저는 그 원인을 ‘긍정과 창조의 결핍’에서 찾고자 합니다. 386은 부정과 저항 그리고 파괴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사회에 대한 올바른 비전과 청사진을 갖지 못했습니다. 운동권이 대안으로 여겼던 마르크스주의나 김일성주의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였습니다. 당연한 결과지만 운동권 386은 세계화 정보화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자꾸만 과거를 들추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 없는데 어찌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으로 80년대를 위한 ‘진혼굿’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그 어두웠던 뒷골목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과거의 부채의식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합시다. 산업화(正)와 민주화(反)를 넘어 선진화와 자유통일(合)을 이룰 수 있는 21세기형 자유주의, 애국적 세계주의의 담지자(擔持者)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조국이 우리 세대에 부여한 새로운 임무가 아닐까요.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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