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씨는 북한을 탈출할 당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와 직접 대면함으로써 그 소원을 이룬 셈이다. 정부의 한 외교관은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최고 수준의 관심 표명”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모 인터넷신문의 기자는 “그가 책에 쓴 수용소 생활은 1977년부터 약 10년간이라 한다. 북한이 아주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임을 감안해도 솔직히 그가 증언하는 북한 생활, 수용소 생활이 지금 현재의 북한 상황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이처럼 여전히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10여 명에 가까운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있고, 그들의 증언은 인공위성 사진 등과 비교하는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쳤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원래 10여 곳이었으나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노출 우려 때문에 1990년대 초반 5곳으로 통폐합됐으며 현재 그곳에 갇혀 있는 수인은 2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강 씨는 최근 출판된 ‘수용소의 노래’ 개정판 서문에서 “부시 대통령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탈북자들이 쓴 피눈물 나는 수기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썼다. 그의 바람대로 노 대통령에게 이 책을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과거 인권변호사 시절 독재에 항거하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한 노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서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다. 혹시 참모들 중에서 이 책을 권한 사람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남북관계가 악화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등은 이른바 진보계열이 북한 인권에 침묵하고 외면할 때 내놓는 변이다. 북한 인권문제는 사실무근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김정일 옹호세력도 있다. ‘북한 인권개선은 개혁개방 유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론자들도 있다.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북한 주민의 인권만은 남북관계를 위해 희생돼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은 또 인권유린의 가해자인 김정일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사에서 도대체 가해자인 통치자를 압박하지 않고 인권개선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는지 알고 싶다.
미국은 정작 ‘김정일 체제 죽이기’에만 관심이 있으며 인권은 하나의 압박수단일 뿐이라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 달라며 ‘인권외교’를 주문했던 사람들이 김정일에겐 왜 이리 관대한지 묻고 싶다. 자신들이 피해 당사자가 아니어서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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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계열의 북한 인권 외면은 거의 담합의 수준에 와 있다. 그 안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나서서 숨통을 틔워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반인권 세력으로 낙인찍히면 헤어날 길이 없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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