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솔잎은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가랑잎이 요란을 떠는 법인데, 이치가 뒤바뀌었으니 가만히 입 다물고 있겠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무색하게 만들고 청중을 사로잡았으니 얼마나 절묘한 비유이고 재치인가.
재치 있는 말솜씨는 정치인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큰 자산이다. 특히 자신을 적극적으로 세일즈 해야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말솜씨를 타고났다. 얼마 전 관훈클럽 초청으로 열린 조찬토론회에서 한 기자가 ‘연구에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답변했다. 조국을 위해서 보안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흥적인 대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재치 있지 않은가.
말솜씨가 좋기로는 노무현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북 경선 때 장인의 좌익 활동에 대한 공격을 받자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라고 대꾸해 오히려 상황을 반전시켰다.
정치인들은 말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정치인들이 말을 제대로 가려 하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 밥그릇을 걷어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얼마 전 국회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 간에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 와중에 여야 의석에서는 “총리, 한번 해보자는 거야”, “김 의원 저놈이…”라는 막말이 오가기도 했다. 이 총리가 국회에 나올 때 더러 있는 일이고 국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풍경이니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의 정치 수준이 한심스럽게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의원이 되려면 먼저 말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 상대방을 비난하더라도 반드시 이름 앞에 ‘존경하는’ ‘학식 있는’ ‘용감한’ 등의 수식어와 함께 존칭을 붙여 불러야 한다. 심한 인신공격이나 욕설은 금기시돼 있다. 특히 ‘거짓말쟁이’ ‘비겁한 녀석’ ‘멍청이’ 등의 욕설은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된다.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간 자칫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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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 이제 우리도 말의 수준을 높일 때가 됐다. 그 첫걸음은 말을 듣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성격이 직설적이라서’ 따위의 변명은 치우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을 살려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보고 배우는 국회에서부터 먼저 시작하는 게 좋겠다.
이진녕 정치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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