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은 자꾸 단서와 복선(伏線)을 깔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핵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좀 더 많은 양보를 선행하지 않으면 회담에 안 나오겠다는 자세로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이 이러니까 “남한을 끌어들여 국제사회의 핵 포기 압력도 모면하고, 한미관계까지 이간질하려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면 구차하게 조건을 달지 말고 즉시 회담에 복귀해야 한다. 미국도 북이 회담에 나오면 모든 가능성을 놓고 협상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약속했다는 8·15이산가족 상봉과 장성급 군사회담 재개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8·15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거의 관례처럼 해 왔던 일이다. 장성급회담은 1년 전 제14차 장관급회담에서 개최하기로 공동 발표까지 해놓고 북한이 지키지 않은 사안이다. 6·15평양축전에 참가한 남측의 관민(官民) 대표단이 목이 터지도록 ‘민족공조’를 외친 것에 비하면 성의 없는 답례가 아닐 수 없다.
정 장관도 이번 면담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 성사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남북문제에 접근해서는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다. 과도한 대북(對北) 지원이나 저자세가 모두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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