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한국에 오면서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이죠. 코뼈가 3번 부러졌고 손가락 골절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야 밝히지만 20여 년 동안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진 상태로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게다가 20세 때 양 손목의 뼈가 부러진 후 붙지 않아 지금도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물 컵도 제대로 집어 올리지 못하고 젓가락질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런 몸으로 1993∼1995년 성남의 3연속 우승과 2000년 안양 LG(FC 서울 전신)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3년엔 무려 887분 동안 무실점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도 무서운 골잡이들이 있을까?
“노상래 이상윤 이동국 같이 갑자기 벼락 슛을 날리는 선수가 무섭습니다. 슛 타임이 빠른 데다 사전 동작 없이 슛을 쏴대는 박주영하고 맞서지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그는 2000년 러시아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구리 신씨 시조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말은 아직 떠듬떠듬하는 수준. 아내와 유학 중인 아이들(딸 22세, 아들 20세)은 모두 러시아 국적이다. 모스크바에 갈 땐 가족 중 그만이 비자를 받는다. 그는 지금도 매달 꼬박꼬박 모스크바의 아버지(75), 어머니(68)에게 생활비를 보내드린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골키퍼란 어떤 것일까.
“움직이지 않고 막는 골키퍼가 최고입니다. 그만큼 위치 선정을 잘하는 것이지요. 한국 선수 중에선 이운재와 김병지가 단연 뛰어나지만 요즘은 김병지가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골키퍼들은 대부분 발로 막는 것에 약합니다. 기본 자세가 잘못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는 4월부터 꿈나무들을 위한 ‘신의 손 축구교실(www.godhands.co.kr)’을 열고 한국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사전엔 결코 ‘골인’이란 없다. ‘골인과의 전쟁’은 그의 평생 화두다.
▼신의손이 본 박주영▼
박주영은 ‘라데 스타일’이다. 라데는 세르비아 출신으로 1994년 K리그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역대 최고의 용병. 그는 스피드를 살린 간결한 드리블로 골문을 향해 대시하기 때문에 수비수들뿐만 아니라 골키퍼로서도 막기가 힘들었다.
박주영도 같다. 박주영이 드리블하면서 골문으로 대시하는 것을 보면 라데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박주영은 드리블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고 힘의 낭비가 없다. 스피드를 실어서 전후좌우 사방으로 꺾으면서 들어오기 때문에 수비수들은 정말 막기 힘들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벼락 슛을 날린다. 언뜻 보면 화려하지 않지만 골키퍼로선 가장 무서운 선수다.
문제는 박주영을 그대로 놓아두라는 것이다. 주위에서 자꾸 부추기면 대선수로 크기 힘들다. 그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이제 겨우 시작하는 스무 살의 어린 선수일 뿐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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