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분열을 이용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독일은 이 폭탄의 완성 단계까지 왔습니다. 미국도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는 곧바로 우라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원자폭탄 연구에 나섰다. 한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던 원폭 연구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럽 과학자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1942년 6월 18일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특수 임무를 띤 군사지역이 뉴욕 맨해튼에 설치됐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공식 가동이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13만 명의 과학기술자가 동원되고 20억 달러의 재원이 투입됐다. 1943년 뉴멕시코 주 로스앨러모스에 3만 평 규모의 원자폭탄연구소가 완성됐다.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버클리대 등에 흩어져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2년 뒤 7월 연구소 근처 사막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원폭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신호였다.
원폭 개발에 참가한 많은 과학자들은 폭탄을 실전에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폭탄이 불러올 참상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미 원폭 개발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항복을 선언한 뒤였다.
그러나 정치인과 군인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은 폭탄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없었다. 같은 해 8월 6일 B-29 미군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우라늄 핵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 사흘 후 나가사키(長崎)에 플루토늄 핵폭탄 ‘팻 맨’이 떨어졌다. 다음날 히로히토(裕仁) 일본 국왕은 항복을 선언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포츠담회담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고책임자였던 레슬리 그로브 장군에게서 원자폭탄 투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통령: 잘 됐습니까?
장군: 거대한 ‘뻥’ 소리가 나며 터졌습니다.
대통령: 축하합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로 기록될 것입니다.
같은 시간 히로시마의 한 의사는 지옥의 현장을 목격했다.
“나는 부상으로 눈알이 빠져나온 한 소녀를 봤습니다. 소녀는 손에 눈알을 들고 있었습니다. 눈알은 뭔가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인류 파괴의 무기를 만든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원망 같았습니다.”(리처드 로즈의 퓰리처상 수상 저서 ‘원자폭탄 만들기’ 중에서)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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