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중위의 어머니 배영순(55) 씨, 아버지 김용배(58) 씨, 누나 수정(34) 씨, 형 종범(32) 씨 등 유족과 친지 10여 명이 김 중위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5시 30분경 고향 전북 완주군 집에서 전화로 사건 소식을 전해 듣고 낮 12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 김 씨는 아들의 영정을 계속 보기 힘들다며 영안실을 자주 비웠고 어머니 배 씨는 완전히 기진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있었다.
형 종범 씨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전역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3월 GP 근무를 끝냈는데 제대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GP 근무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그는 “동생은 농어촌 학자금을 융자받아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돈을 갚으려고 사병이 아닌 장교로 입대했다.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혼자 벌어 썼고 최근에는 내가 시간강사하면서 힘들 것이라며 차도 한 대 사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완주군의 김 중위 고향 집에는 외할머니 한귀님(88) 씨를 비롯한 친지, 주민들이 모여 김 중위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김 중위를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는 한 씨는 “내 손자지만 참 착하고 공부도 잘했다”며 “제대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며 흐느꼈다.
김 중위의 초중고교 동창인 서영동 씨는 “종명이는 어렸을 때부터 리더십이 강해 반장과 학생회장 등을 도맡아 하던 모범생이었다. 제대하면 소주 한 잔 같이 하기로 약속했는데 이제는 얼굴도 못 보게 됐다”며 슬퍼했다.
김 중위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다는 인근 완주 동부교회 집사 양오연(58·여) 씨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어른들에게 인사성이 밝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주민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다”고 전했다.
전역 후 공무원이 되고자 했던 김 중위는 시험공부에 전념키 위해 최근 장교기숙사를 나와 자취방까지 얻었던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학군 41기인 김 중위는 완주에서 태어나 간중초교와 용진중, 전주 영생고를 졸업한 뒤 전주대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해 2003년 졸업과 동시에 입대했다.
김 중위 시신은 20일 새벽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율동의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포천=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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