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희생된 장병의 명예 보호해야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최전방 감시소초(GP)에서 희생된 장병의 유족들은 사고원인을 정확히 밝혀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입대한 아들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병의 광적(狂的)인 소행으로 죽은 것도 억울한데 “욕설을 했다” “괴롭혔다”는 발표가 이어져 가슴이 더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은 상명하복의 엄정한 기율(紀律)이 적용되는 특수조직이다. 상급자가 작업을 하는데 인사도 안 하고 지나치는 하급자에게 꾸지람을 하고 정신교육을 할 수도 있다. 암기를 강요한 사례도 7차례나 있었다고 하는데 군 생활에서는 암호처럼 반드시 외워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물론 하급자에게 인격 모욕적인 욕설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혈기 넘치는 젊은 군인들 사이의 언어가 완벽하게 정제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설령 욕설을 좀 했다고 치자. 그것이 부대원 전원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워 병사 26명이 자는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무차별 난사하고 총탄을 맞고 신음하는 병사를 확인 사살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

군은 희생 장병들의 시신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려 해 유족의 분노를 사더니 이번에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병들의 명예까지 깎아내리고 있는 격이다. 범인이 진술하는 내용을 실제 일어난 일처럼 발표하는 것은 희생된 장병들을 두 번 죽이고 부모들의 아픈 가슴을 짓밟는 일이다. 더욱이 범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구타는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사자(死者)에게도 명예가 있다.

신세대의 사이버 게임 중독이 현실세계에서 무감각을 가져왔다는 논리도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지금의 구세대는 과거의 신세대였고 신세대도 곧 구세대가 된다. 세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근본가치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사건의 근본 원인은 범인의 잔인한 성정(性情)과 정상을 일탈한 행동, 그리고 위험 사병을 제때 발견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군 당국에 있다. 군은 사고원인을 명확히 규명해 유족들의 의구심을 풀어 주고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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