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暴政의 거점’ 공방 속에 열린 남북회담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전에 없이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열리고 있다. ‘폭정(暴政)의 거점’이라는 지칭을 둘러싼 북-미, 한미 간의 공방이 우선 그렇다. 그제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가 “향후 1개월 만이라도 ‘폭정의 거점’이라는 표현을 (미국이) 안 쓰면 6자회담 복귀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에 미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은 북한을 ‘폭정의 거점’으로 거듭 지목했다. 이에 대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현재의 남북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우리 외교부 장관이 미 정부에 대해 이런 식의 논평을 정면으로 한 것은 이례적이다.

외견상 남북이 손잡고 미국에 대해 각을 세우는 형국이다. 그동안 많은 남북회담이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대화가 진행된 적은 드물다. 이번 회담이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회담 자체의 성공은 물론이고, 그것이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까지도 고려하는 냉철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이 먼저 핵과 6자회담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하고, 우리 측도 이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7월 중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밝힌 만큼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우리 정부가 강조해 온 ‘북핵 문제에 대한 주도적 역할’도 사실로서 입증될 수 있다.

회담에서 남측이 북측의 비위나 맞추는 데 급급하면 한미관계는 더 소원해질 우려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 장관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양파껍질 벗기듯 조금씩 내놓고 있어 투명성 시비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회담에서까지 할 말을 제대로 못한다면 의구심만 키울 소지가 크다. 오로지 비료나 식량을 주기 위한 회담이 아니라면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회담도 성공하고 한미공조에도 더 이상의 상처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정 장관에게 한 말들이 진실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과 관계국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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