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성호]日 역사인식, NGO가 바꾸자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2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이견만 확인한 채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끝났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나, 일본 측이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성과라면, 제2기 역사공동위원회 산하에 교과서연구위원회의 설치 및 역사교과서 공동연구, 김포∼하네다(羽田) 항공편의 하루 8편으로의 증편에 관한 합의,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사람들의 유골 반환과 한국 거주 원자폭탄 피해자 등에 대한 지원 약속 등이다. 이 정도로 한국민의 대일 감정이 누그러들지는 의문이다.

한일 간의 역사(과거사)문제는 대략 5가지 차원의 문제로 나누어진다.

첫째, 역사 인식의 차원이다. 이는 식민지 지배의 기획·실행과 일제강점 기간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당연히 피해자 중심의 것이어야 하며 가해자의 진솔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둘째, 역사 기술의 차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해 동양의 역사서 기술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정신에서 시작한다. 사실대로 기록할 뿐 가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관들이 이러한 정신 하에 권력에 굴하지 않고 사초(史草)를 썼기에 우리는 역사서를 믿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지난 100년의 근세사를 은폐하고 미화하는 행동, 즉 분식된 역사를 계속 고집한다면 그것은 현존하는 일본 내 역사서들의 진실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이 점을 일본 측 역사가들이 깊이 성찰하지 않는다면 한일 간에 역사교과서 공동연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셋째, 역사교육의 차원이다. 자라나는 후대에 진실의 역사를 가르치고 또 교훈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긍정의 면만 부각시키려 할 경우 일본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넷째, 미해결의 역사(과거사) 청산의 차원이다. 이는 1965년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청구권협정, 문화재반환협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일제강점기 중 우리 측에 가한 고통과 피해가 완전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강제연행자의 임금 체불 등의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와 관련해 민간 차원의 보상 해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1965년 협정에 대한 추가의정서나 선언의 형식을 통해 기존 협정의 미비점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섯째, 불행한 역사에 대한 기억의 차원이다. 일본의 지도층 인사들의 계속되는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은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억울한 역사로 기억하고 싶은 ‘소아적 국수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진정한 대국으로 부상하지 못할 것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도 기대 난망이다. 누가 자신의 운명을 일본에 맡기려 하겠는가.

위의 다섯 가지 차원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올바른 역사 인식에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와 지도층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지 못한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한일 양국의 양심세력과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억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일의 비정부기구(NGO)들, 중국 등 아시아의 민간활동가들, 그리고 관련 국제기구와 긴밀하게 연대할 필요가 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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