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주헌]기업 기부금 명문대 쏠림 심하다

  • 입력 2005년 6월 23일 03시 02분


얼마 전 삼성그룹이 고려대에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400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연세대에 도서관 신축을 위해 300억 원을, 이화여대에는 캠퍼스센터 건립을 위해 수백억 원을 기부했다.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초현대식 기념관과 도서관을 그저 그림의 떡처럼 지켜봐야 하는 옆집 대학교수로서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재정 여건이 취약하기만 한 사립대에 외부 기부금은 가뭄의 빗줄기와 같은 존재다. 하버드대가 세계 최고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하버드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대학이다”라고 간략히 답한 하버드대 총장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학 발전의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분명 돈이다.

모든 투자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투자의 핵심주체인 우리나라 대학의 재정 여건은 어떠한가?

재정 여건이 양호한 사립대들은 대체로 수도권 소재 상위권 대학이다. 이들 대학은 재단 전입금뿐만 아니라 동문회의 기부 능력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학 교육의 3분의 2 이상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사립대들은 등록금 이외에 마땅한 재원이 없다.

이 같은 현실에서 획기적인 대학 발전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재정자립도가 비교적 양호한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학들은 장기발전계획을 구상하기보다는 생존계획을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살아남기에 급급한 대학이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에도 대학 간 재정 여건 차이가 큰데, 여기에 기부금까지 상위권 대학에 집중됨에 따라 대학 간 교육서비스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젊은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영민한 엘리트뿐만 아니다. 사회의 튼튼한 허리 역할을 해줄 성실한 ‘보통 인재’도 많이 필요하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사회의 중추를 견고히 지키고 있을 때 엘리트의 역량도 한껏 발휘된다.

수능을 기준으로 소위 상위 3개 대학 입학생들은 전체 수험생의 2%에도 미치지 않는다. 나머지 학생들을 방치한다면 수능 몇 점의 차이로 인한 벌(?) 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사학에 기부하는 많은 기업들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주제 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기부 대상을 선정할 때 개별 기업이 아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기부의 효과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기업 입장에서 기부의 효과를 따진다면 현재처럼 몇몇 상위 대학에 기부가 집중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부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조건 없이 재물을 내놓는 것 아닌가? 그러니 투자와 달리, 기부는 ‘사회 기여’라는 큰 틀에서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명분에도 맞을지 모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추산으로는 국내 기부 시장 규모가 연간 1조5000억 원대로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도 성숙된 기부 문화가 싹트고 있음이 분명하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사학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수많은 보통 인재들을 2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기대해 본다.

우리 대학은 세계 초일류 대학 육성과 대학 간 서열 완화라는 어찌 보면 상충된 과제를 안고 있다. 두 가지 모두 국가 경쟁력 향상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로서 ‘기부 시장 규모의 확대’와 ‘편중되지 않은 기부’를 통해 해결될 수도 있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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