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앰배서더Really?]조선낫 그 금속공학의 신비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09분


현재 우리 농가에 쓰이는 낫에는 조선낫과 왜낫이 있다. 조선낫은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드는 우리 고유의 낫을 가리키고, 왜낫은 과거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현재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조선낫은 풀이나 나무를 베거나 쳐낼 때 사용하면 닳기는 해도 부러지거나 이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왜낫은 연한 풀을 베기는 좋으나 강한 나무를 쳐낼 때는 부러지거나 이가 빠진다.

이런 특성은 우리 대장장이의 독특한 담금질 기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에 달구고 차가운 물에 식히는 일을 여러 차례 거듭할 때(담금질) 달군 쇠의 색깔이 황혼빛에 이르는 순간이 중요하다. 이때 몇 차례 안쪽 날부터 시작해 등 부분까지 순간적으로 물에 담근다.

하지만 날 부분은 갑작스레 담금질하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에 손끝에서 나오는 숙련된 기술이 필수다. 물방울이 날 위에서 구르도록 부드럽게 물에 담그는 것. 이 과정을 무려 80회나 100회를 반복하면 날 부분이 가장 강해지고 가운데와 등 부분으로 오면서 강도가 약해지면서 유연해진다. 그 결과 나무를 쳐낼 경우 낫날에 가해지는 충격이 뒷부분에서 차례로 흡수된다. 조선낫이 부러지지 않고 수명이 긴 비결이다.

현대 금속공학의 관점에서 조선낫의 조직을 분석해 보면 날에서는 최고 강도의 조직(마텐자이트)이 발견된다. 한편 중심부의 조직(베이나이트)은 질기면서 충격 흡수를 잘하고 가벼운 특성을 가진다. 놀랍게도 이 조직은 1970년대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기름이 덜 드는 자동차 강판을 만들 때 처음 사용됐다.

이렇듯 우리 겨레의 손때 묻은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그 속에는 수천 년간 쌓여 온 대단한 과학 슬기가 듬뿍 배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 chanto@ns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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