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아니 속편이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어린 정치인들은 과연 신선한 정치를 할까. 고교 3학년이던 2월, 민주노동당 최연소 대의원으로 당선됐던 이계덕(19) 씨의 말을 들어 보면 아닐 것 같다. e메일로 탈당계를 내고 ‘정치인’에서 ‘일반 청소년’으로 돌아온 그는 청소년단체의 세력다툼이 기성정치인의 권력싸움 못지않다고 털어놨다. ‘어른들과 똑같이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대들이, 왜 어른들과 똑같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가?’(인터넷마당 대자보)
▷신진 또는 개혁세력이라는 이유로 정계에 입문해 놓고는 1년도 안 돼 구악(舊惡) 뺨치는 구태(舊態)를 보이는 모습이 낯선 건 아니다. 그래도 정치판도 아닌 ‘청소년판’에 싸움과 비방, 인신공격, 명예훼손이 난무한다든지, ‘정치적 양지만을 쫓아다니는 철새’ ‘변절자’ 하면서 서로 공격한다는 건 놀랍다 못해 서글프다. 미워하며 닮아 가는 건가, 정치에 발을 적시면 그렇게 변해가는 건가.
▷미국정치학회보(APSR) 최근호는 특정 정치적 이슈나 이데올로기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유전자의 영향이라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그래서 당파를 떠난 협조와 통합은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다행히도 이 군은 정치적 싸움이 싫었을 뿐, 정치는 좋았다고 했다. 현실정치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정치판을 떠나는 변(辨)치고는 아름답다. 이젠 ‘싸움 없이 정치하기 운동’이라도 펼쳤으면 좋겠다.
김순덕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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