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여성가족부, 남성도 껴안아라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56분


2001년 출범한 여성부가 4년 만에 여성가족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여성부 출범은 시작부터 소란스러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조직을 과연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 물음부터, 정부조직으로서 최소한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까지 논의가 분분했다. 그러다보니 초미니 부처로서 내각에서 받는 설움도 컸다. 여성부 출범 당시 예산은 288억 원. 보건복지부로부터 보육업무를 이관 받고서야 4523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여성부는 사회 각계의 성차별적 관행에 대해 철퇴를 내리며 ‘존재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성매매특별법을 발효시키고 금년에는 여성계의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남녀 차별 개선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된 것도 역할 축소라기보다는 업무의 ‘수출’로 봐야 할 것이다.

이번에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개편된 데는 가족형태의 다양화와 급격한 가족해체 현상이 배경에 깔려 있다.

본보 플러스 가정면의 시리즈 ‘다시 가족이다’에서 보듯 이제 가족의 형태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됐다. 입양가족 재혼가족 다국적가족 기러기가족 동거가족 등등. 이혼이나 미혼으로 인한 싱글족이 600만 명에 이르는 시점에 1인가구도 가족으로 분류해 정책적 지원을 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가족의 다양화 자체가 아니라 가족 형태의 변질에 따라 가족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돌봄 기능의 약화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가정에는 더 이상 노인이나 환자를 돌봐 줄 인력이 없다.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거나 시아버지가 뇌중풍에 걸리면 아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위기를 맞게 되고 형제자매 간에는 싸움이 시작된다.

돌봄 노동은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국민총생산(GNP)을 증대시키는 것은 아니어서 그동안 평가절하 되어 왔다. 또한 모성애, 헌신, 희생이라는 그럴듯한 가치와 결합돼 여성이 떠맡아야 하는 일로 간주돼 왔다.

이번에 열리고 있는 세계여성학대회에서의 큰 논제 중 하나도 돌봄 노동에서 여성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여성가족부는 출범과 동시에 많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

우선 가족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 이제 자녀나 노인에 대한 돌봄 기능을 여성에게 일임하는 가족정책은 유지될 수 없다. 양육과 부양의 사회적 분담을 전제로 새 틀을 짜야 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우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여성가족부의 또 다른 과제는 ‘남성 껴안기’다. 지금도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는 ‘여자도 군대에 보내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남자들의 치기어린 행동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여성부 정책에는 지나치게 강경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만 반영됐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낳으면 남성에게도 의무적으로 휴가를 주는 ‘파파쿼터제’는 남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다.

가족은 남녀가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성가족부의 출범은 여성부가 하는 일에 비판적이거나 시큰둥했던 남자를 적극적 지지자이자 동반자로 끌어들일 호기이다.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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