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110번째 정당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여기저기서 ‘신당(新黨)’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동아(新東亞) 7월호 인터뷰에서 “반드시 양당(兩黨) 체제로 가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3당 체제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당 노릇을 제대로 못할 바에야 신당을 창당하는 게 낫다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말에도 그는 공감을 표시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민주당과의 합당론에 이어 고건 전 국무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우자는 정계개편론까지 나왔다.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하는 ‘중부권 예비신당’은 세(勢)를 결집 중이다. 내년 6월의 지방선거와 2007년 12월의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당 이합집산과 신장개업 움직임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1963년 정당법 제정 이래 109개의 정당이 생겼고 102개가 사라졌다. 신당 하나가 더 생기면 40여 년 만의 110번째 정당이 된다. 광복 후부터 따지면 20여 개가 더 많다. 정당의 평균 수명은 3년 정도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7개 정당 중 최장수 정당은 10년 1개월의 자민련이고 한나라당 7년 7개월, 민주당 5년 5개월, 민주노동당 5년 1개월, 열린우리당 1년 7개월 순이다. 민주주의 선진국들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생긴 일본의 자민당도 50년 됐다.

한국의 정당 체제가 취약하고 불안정한 것은 이념이나 정강 정책보다는 선거에서의 득실을 먼저 따져 ‘헤치고 모이는’ 정치 풍토 때문이다. 역대 집권자들은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어김없이 ‘리모델링 여당’을 만들었다.

민주공화당(박정희) 민주정의당(전두환) 민주자유당(노태우) 신한국당(김영삼) 새천년민주당(김대중) 열린우리당(노무현)이 모두 ‘대통령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창당 1주년 메시지에서 “100년 가는 성공한 정당을 만들어 보자”고 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지금 열린우리당 안에서 ‘100년 정당’의 희망을 믿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100년은커녕 당장 눈앞에서 내분(內紛)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행정부와 함께 국정(國政)을 챙겨야 할 집권당에서 서로 ‘함께 못 하겠다’는 그룹 간 파열음이 일고 있다. 청와대가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여당까지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민주당 시절에도 신당 싸움에 매달려 국정을 방치한 전과(前科)가 있다. 갈라서면서 민주당을 향해 ‘기득권 정당, 지역주의 정당’ 같은 험한 말을 쏟아놓고, 2년도 안 돼 합치자고 하는 것은 창당 명분을 스스로 뒤집는 자기부정이다.

‘중부권 신당’은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또 하나의 지역당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명박 시장의 3당론은 대선 행보에 장애물이 생기면 말을 갈아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집에 문제가 있으면 수리해서 쓰면 된다. 툭하면 부수고 새집 지을 궁리만 해서는 명가(名家)가 될 수 없고 돈만 많이 든다. 더욱이 정당은 정치인만의 결사체(結社體)가 아니다. 국회의원 한 사람만 있어도 국고보조금이라는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시대 흐름이나 정치 발전과 거리가 먼 정당이 출현하면 납세자가 덤터기를 쓰는 셈이다. 110번째 정당의 잉태를 속 편하게 지켜볼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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