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부활하는 링컨’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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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미국인들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지만 ‘동성애자였다, 매독환자였다’는 등 깎아내리는 측도 없지 않다. 그는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남긴 기록도 10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4월 15일 암살당하는 바람에 ‘신화(神話)’가 됐다. 2009년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그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재조명 열풍이 미국 내에서 일고 있다. 그의 위대함은 ‘실패에서 배우고,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접점(接點)을 찾아낸’ 모습에 있다는 것이 링컨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링컨에 대한 비판론의 하나는 노예해방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나는 흑인과 백인을 정치·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발언이 근거로 인용된다. 실제 그는 노예제도 자체에는 비판적이었지만,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노예제 폐지운동에는 반대했다. 그가 1863년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한 것도 남부군의 ‘전쟁물자’인 흑인노예들의 이탈을 노린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여론이 성숙하기를 기다린 것뿐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는 휘그당 소속 주(州)의원이던 시절 지방지에 익명으로 정적들을 비난하는 글을 200통 이상 기고해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1842년 민주당 소속 회계감사관을 비난하는 글을 익명으로 기고했다가 들통 나 결투를 요청받고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는 정적들에 대한 비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링컨은 개인적으로 9세에 어머니, 중년에는 두 아들을 잃는 불행을 겪었다. 그러나 인간적 고통을 인내와 관용으로 극복했다. 남북전쟁 중 북군 총사령관 막사를 찾아가 두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돌아온 사령관이 침실로 바로 올라가버리자 그냥 돌아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뿐 아니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링컨을 존경한다고 한다. 그의 인내와 관용 정신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존경 아닐까.

이 동 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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