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교육현장에서는 독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도 그건 ‘대학입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듯싶다. 얼마 전 서울대가 “장기간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 유리하도록 창의적인 사고력과 분석력을 측정하겠다”면서 논술고사로 정시 입학생을 뽑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독서는 당분간 학생들에게 꽤 대접을 받을 전망이고, 학생들은 좋든 싫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은 입시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다국적 여론조사기관 NOP월드가 전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주당 독서시간을 조사해 보니 한국인이 불명예스럽게도 꼴찌였다. 한국인이 책 신문 잡지 등 활자매체를 읽는 데 할애한 시간이 고작 주당 3.1시간으로 1위를 차지한 인도 국민 10.7시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30개국 평균치인 주당 6.5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니 정말 심하게 안 읽고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이 TV 시청에 주당 15.4시간을 쓰고, 컴퓨터 사용에 주당 9.6시간을 쓰고 있다니 활자매체에 대해 참으로 야박한 시간 배정이 아닐 수 없다.
전철 안이나 길거리 등에서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기에 열중하거나 뭔가를 검색하느라 바쁜 젊은이들을 지켜보면 책은 TV는 물론 휴대전화에마저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영상매체가 인기가 있다고 해도 많은 전문가가 깊이 있는 분석력과 통찰력, 사고력과 상상력 등을 키우기에는 책 신문 잡지 등 활자매체를 통한 독서가 훨씬 유용하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적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책 읽기가 어렵고 딱딱하다는 인식이 보통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책 읽기를 공부와 연관지으며 성장했다. 부모들 눈에 책 잘 보는 아이는 곧 ‘될성부른 나무’였다. 책 읽기는 고상한 학습으로 받아들여졌고 ‘즐기는 책 읽기’는 되기 어려웠다.
몽테뉴는 ‘독서같이 값싸게 주어지는 영속적인 쾌락은 없다’고 했고 책 읽기는 평생 해도 재미있는 오락이라고 말들 하지만 이미 학습을 위한 독서가 돼 버리면 읽기 위한 읽기가 돼 버린다. 우리는 놀듯이 책을 들춰보고, 잠깐 읽다가 덮어 두고, 즐기면서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우리 국민은 독서를 원하면서도 독서하지 않는 국민이 되었나 보다.
정부가 나서서 책 읽기를 주도해 대학입시에 독서 이력을 반영한다고 하고, 서울대를 위시한 대학들이 독서 능력을 좋은 인재를 뽑는 척도로 적극 활용하려 한다고 한다. 강제성을 동원한 책 읽기가 한편으론 염려되면서도 책 안 읽는 국민으로서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자면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자발적 독서가 아닌 강제성을 동원한 책 읽기가 본래 책 읽는 즐거움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싶어서다.
굳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면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책이 따라 줘야 하리라. 예를 들어 도서관 정책을 강화해 원하는 책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또 독서를 권하는 사회가 되려면 책 읽는 사람이 대우 받고 존중 받는 문화, 책 안 읽는 것이 부끄러운 문화, 책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습관화하도록 유도하는 가정 문화와 이를 실행하는 학교 문화가 뒤따라 줘야 할 것이다.
오길주 문예원 원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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