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7월 5일자 동아일보 1면의 한 컷 만화 ‘동아희평(東亞희評)’은 이산가족 찾기 TV 생방송을 보면서 울고 있는 강아지 그림 밑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산가족과 함께 밤새 흘린 온 국민의 눈물을 상징하면서 30년 넘게 민족의 비극에 눈감아 온 북한을 비판한 것이었다.
같은 해 6월 30일 오후 10시 15분. KBS 1TV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첫 전파를 탄 시간. 이때부터 한반도 남쪽은 조금씩 젖기 시작하더니 금세 눈물의 해일에 휩싸였다.
생이별했던 아들을 만난 백발 노모는 “어느 하늘 밑에서 누굴 의지하고 살았더냐. 내 아들아…”라며 목 놓아 울었고, 죽은 줄 알았던 동생과 재회한 중년의 형은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지 않게 하소서”라며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견 아나운서들조차도 “목이 메어 말하기가 어렵다”며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았고 그 모습이 시청자를 더 크게 울리기도 했다.
한 방송진행자는 훗날 “가장 어려웠던 것은 철야 생방송의 강행군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게 감정을 자제하느냐였다”고 회고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TV를 일부러 끄는 시청자, 울고 있는 부인에게 ‘밥 차려 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 남편, 퉁퉁 부은 눈 때문에 맞선을 미뤄야 했던 20대 여성 등등.
6·25전쟁으로 끊겼던 핏줄을 잇기 위한 간절한 ‘스무고개’가 완성될 때마다 그 감동과 통한은 국민의 눈물샘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 나간 것이다.
그해 말 ‘성인 남녀 중 88.8%가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 정도다. 동아희평의 ‘울고 있는 바둑이’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총 138일간(6월 30일∼11월 14일) 453시간 45분간 진행됐다. 10만952건의 신청을 받아 그 절반인 5만3162건이 TV로 소개됐고, 그중 1만189건(19.2%)이 상봉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22년.
29일 북한 개성의 자남산여관에서는 이산가족 화상 상봉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간 기술자 실무접촉이 처음 열렸다.
이 작은 시작이 한반도판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섣부른 욕심인가.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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