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의 피부발진 증상을 보인 첫 환자가 나온 것은 5월 20일.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4일 1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접수한 후 조사에 착수해 25일 만인 29일 원인균을 분리해 냈다.
분리된 ‘용혈성 아카노 박테리아’는 연구 사례가 많지 않은 희귀한 균. 의료계에서는 “원인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밝혀냈다”는 찬사도 나오고 있다.
원인균 규명이 늦은 것도 아니고, 치료 가능한 항생제까지 찾아냈으므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단 한 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해도 신속히 알리고 있는 보건 당국이 어째서 이번에는 전염병 발생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은 걸까.
198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 치료제가 듣지 않는 폐렴 증세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몇 달 뒤 뉴욕에서도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이 발생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그 후 수년 동안 공개적으로 증상을 수집하고 정리해 밝혀낸 이 전염병이 바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다.
새로운 질병의 발생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치료는 더 요원하다. 그럼에도 보건 당국이 시시각각 들어오는 질병발생 정보를 전 세계와 주고받는 것은 질병 확산에 최대한 빨리 대처하기 위해서다. 원인을 찾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2003년 초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때도 그랬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이미 벌어진 일을 알리지 않았다. 호흡기로 전염된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 의심되는 증상부터 널리 알렸어야 옳다.
오늘날의 역병(疫病)은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사람의 왕래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격리되지 않은 환자가 그동안 다른 지역에 가서 균을 옮기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전염병 관리는 비밀 군사작전이 아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발생했지만 증상이 크게 위협적이지 않으므로 위생에 주의하라”고 미리 알렸다면 어땠을까. 걱정은 했겠지만 의심은 없었을 것이다. 원인은 밝혀냈지만 국민의 걱정은 이제 시작됐다.
손택균 교육생활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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