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언 리(1913∼1967)의 전기를 쓴 앤 에드워즈는 한창 때의 그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그녀가 시대를 초월해 명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외모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파리 상류여학교와 런던 왕립연극학교를 다니며 연극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에도 정진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폭넓은 교양과 지성으로 작품을 분석해 연기에 활용할 줄 알았고, 어떤 스타일의 작품과 인물에도 몰입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시켰다. 그녀는 ‘불타는 영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안나 카레니나’ 등 많은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는 “비비언 리 정도로 수려한 미모를 가졌다면 연기력은 필요 없을 것이다. 또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나다면 용모는 그 다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라고 둘 다 겸비한 그녀를 칭찬했다.
그러나 비비언 리가 영화보다도 연극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1940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영화배우가 아니라 무대배우입니다. 무대배우만이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역을 할 수 있거든요.”
비비언 리가 본능적으로 끌린 역은 연극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1951년)에서의 클레오파트라였다. 그녀는 클레오파트라의 진실을 캐기 위해 ‘플루타르크 영웅열전’을 비롯한 역사책, 평론, 고대 이집트 미술 등 다양한 책과 자료들을 섭렵했다. 이 연극에서 그녀는 클레오파트라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비비언 리는 1967년 7월 8일 54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쓸쓸히 숨졌다. 완벽한 연기를 추구하느라 몸을 돌보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어쩌란 말이에요?”(스칼렛)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레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에서 떠나려는 레트와 그를 붙잡으려는 스칼렛(비비언 리) 사이에 오고간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최근 발표한 ‘미국 영화 100대 명대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주말, DVD를 통해 추억 속 비비언 리를 다시 만나는 건 어떨까.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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