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묵]자식을 ‘포기’합시다

얼마 전 충남 공주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이모 군이 극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전방부대 총기난사 사건에 묻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 두 달 전쯤 이 군의 아버지가 승용차에 불을 지르고 부인, 딸과 함께 동반 자살한 사건이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외톨이가 돼 삼촌 집에서 지내던 이 군은 사건 당일 부모님 산소에 갔다 온 뒤 학교를 찾아가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이 학교는 최근 들어 명문고로 부상한 ‘자립학교’다. 이 군도 중학교 때 1, 2등을 다퉜고 이 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동네잔치까지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입학 후 성적이 떨어지고 학교 측으로부터 정신과 치료까지 권유받자 아버지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이 군의 자살은 학교나 학생들에게도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학교 관계자는 “우리도 이 군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아버지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심도 생긴다. 아들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했던 아버지로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제 할 일 알아서 하는 자식을 둔 아버지들이야 복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아버지들로서는 “자식이 원수”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고, 가끔 아버지 자리를 내놓고 싶은 생각도 드는 게 당연하다.

기자가 알고 있는 한 학부모는 아들이 하도 말썽을 피우자 “여행을 가자”며 뉴질랜드로 데리고 간 뒤 그대로 현지 학교 기숙사에 집어넣고는 귀국해 버렸다. 울고불고해서 결국 나중에 데려오기는 했다지만, 그 아버지 또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렇다고 자식을 어찌할 것인가. 이 군 아버지의 속사정까지야 알 수는 없지만 아들을 잠시 쉬게 하면서 정신적 안정을 되찾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 들은 얘기다.

내로라하는 재벌 기업의 한 임원이 고등학교에서 ‘왕따’인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가해자인 ‘짱’이 동료 임원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 임원과 아들을 함께 저녁식사에 초청해 동료 아들에게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 좀 잘 봐 달라”는 간곡한 당부와 함께….

기가 막히는 사연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보살피겠다는 아버지의 안간힘이 눈물겨울 따름이다.

이 군 가족의 일이 화제가 되면서 주변의 아버지들과 이구동성으로 한 얘기가 있다. ‘자식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아비보다는 낫겠지”라고 했다가, “그래도 나만큼은 하겠지”로 변하고, 결국에는 “그래, 부모와 자식은 다를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많은 아버지들처럼.

‘포기’란 문자 그대로 자식을 내다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강압’이나 ‘과잉보호’의 유혹에서 벗어나자는 뜻일 게다. 실제로 “포기를 했더니 돌아오더라”는 아버지의 경험담은 의외로 많다.

이 군이 자살하기 전 부모님 산소를 찾아 절을 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자식에게 그런 불행을 강요하기보다는 차라리 함께 ‘포기’하고 살자고 아버지들에게 권하고 싶다.

최영묵 사회부장 y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