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9년 니카라과 소모사 대통령 축출

  • 입력 2005년 7월 9일 03시 21분


1979년 7월 9일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니카라과 대통령은 수도 마나과의 지하 벙커에서 로런스 페출로 니카라과 주재 미국 대사와 마주 앉았다.

바깥에서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이라고 불리는 반정부 좌파 게릴라군이 진격해 오고 있었다.

“나를 도와주시오.”(소모사)

“이미 때는 늦었소.”(페출로)

“너무한 것 아니오. 그동안 내가 미국한테 해준 게 얼만데….”(소모사)

“대신 안전하게 국외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해주겠소.”(페출로)

소모사 대통령도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일주일 후 그를 태운 헬리콥터가 플로리다로 향했다. 소모사는 플로리다를 거쳐 파라과이로 피신했지만 오래 목숨을 부지하지는 못했다. 그는 이듬해 이곳까지 쫓아온 FSLN군에 의해 암살됐다.

1937∼79년 니카라과에서는 3명의 소모사 대통령이 권력을 휘둘렀다.

아버지(가르시아)와 두 아들(루이스, 아나스타시오)이 42년간 잇따라 대통령에 오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족벌 체제를 유지했다.

미국은 소모사 정권 내내 무자비한 폭정과 인권유린에 눈감아 줬다. 소모사 정권이 중남미에서 공산주의를 막는 첨병 노릇을 해준 대가였다.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 당시 미국에 작전기지를 제공한 것도 니카라과였다.

1978년 반정부 신문사 사주가 암살된 것을 계기로 니카라과 국민은 소모사 정권에 등을 돌렸다. 중산층까지 반정부 시위에 합세하자 미국은 소모사를 버렸다.

미국이 소모사를 포기했다고 해서 니카라과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좌파 정권이 새로 들어서자 미국은 콘트라 우익반군에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은 나중에는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교단절 관계에 있던 이란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팔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에 터진 ‘이란 콘트라 게이트’였다.

이후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파나마 등에서도 친미정권 수립을 위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계속됐다.

‘뒷마당’ 중남미에서 절대 권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역설적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 정권들을 탄생시켰다. 최근 수년 사이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 등에서 연이어 탄생한 좌파 정부를 바라보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기분은 어떨까.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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