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성이 보낸 군사가 가져온 글은 대강 그랬다. 패왕이 험한 눈길로 그 군사에게 물었다.
“과인이 알기로 설공이 거느린 군사만도 만 명은 넘었다. 또 항성은 구강을 치러갈 때 데려간 군사만 해도 2만이 되었는데 어찌된 일이냐? 합쳐 3만이 넘는 대군으로 그 절반도 거느리지 못한 팽월에게 지고 설공까지 죽다니….”
그러자 그 군사가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듣기로는 팽월이 워낙 교활하여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우리 군사를 어지럽히다가 돌연한 야습으로 설공을 죽이고 구원하러 온 항성 장군까지 잇달아 쳐부수었다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공이나 항성이 허수아비가 아닌 담에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과인이 알아듣게 자세히 말하라.”
패왕이 짐짓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그렇게 묻자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그 군사가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팽월이 수수를 건넜다는 말을 들은 설공과 항성 장군은 각기 거느린 인마를 이끌고 하비 서쪽에서 만나 팽월을 협격(挾擊)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팽월이 군사를 갈라 여기 저기 의병(疑兵)을 내어 두 분 장군의 군사를 멀리 떼어놓았습니다. 곧 설공은 팽월의 양동(陽動)에 속아 많지 않은 군사로 하비 서쪽에 본진을 세우고, 항성 장군은 하비 북쪽에 본진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팽월은 먼저 그런 설공의 본진을 야습해 설공을 죽이고, 다시 구원하러 오는 항성 장군을 도중에 들이쳐 하비성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오래된 생강이 맵다더니 팽월 그 늙은 도적이 못된 꾀는 제대로 쓰는구나. 좋다! 과인의 군사들도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가 보자!”
분노를 호승심(好勝心)으로 바꾼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며 장수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모으게 했다. 오래잖아 장수들이 모두 모여들자 패왕은 의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하비의 일이 마음에 걸려 힘을 다해 싸울 수 없다. 먼저 하비로 달려가 팽월을 잡고 팽성의 등 뒤를 깨끗이 한 뒤에 돌아와 형양성을 깨뜨려야겠다.”
그리고는 장수들을 돌아보다가 먼저 종리매를 불러 말했다.
“장군은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전처럼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으시오. 주가와 종공이 싸우러 성을 나온다면 싸우되, 그렇지 않으면 적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지키기만 하시오. 과인은 보름을 넘기지 않고 팽월을 죽인 뒤에 돌아오겠소.”
“그리 하겠습니다.”
종리매가 그렇게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다시 종(終)가 성을 쓰는 장수를 불러냈다.
“종공(終公)은 따로 군사 5000을 거느리고 성고로 돌아가 그 성을 지키시오. 성고와 형양은 이와 입술 같은 사이라 성고가 우리 손에 있는 동안은 형양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오. 장군은 성문을 높이 닫아 걸고 과인이 돌아올 때까지 다만 굳게 지키기만 하시오.”
종공 또한 두 말 없이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곧 대군을 휘몰아 하비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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