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834년 佛화가 드가 출생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그림이란 잘 모를 때면 어렵지 않지…. 하지만, 알게 되면! 오, 그땐 다른 거야!”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

그의 연필, 그의 파스텔, 그의 붓은 결코 포기를 모른다. 그의 묘선(描線)은 그가 원하는 것에 충분히 가까워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없이 그림에 달라붙어 그걸 한장 한장 모방하고, 다시 모방하여 더 심화시키고, 옥죄이고, 감쌌다. 그에게 하나의 작품은 결코 끝이 났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작업이) 지겹지 않다면 즐겁지 않을 것이네!”

일찍이 앵그르와 라모트를 사사하며 고전파의 세례를 받았던 드가. 그는 인상파전에도 여러 차례 출품했다.

드가와 르누아르, 모네와 세잔 그리고 베를렌과 말라르메가 풍미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의 파리의 풍요함이라니! 1860년과 1890년 사이의 미술과 시(詩)에 있어서 숱한 발명! 그것은 “아름다운 인간과 사고(思考)의 협연”(폴 발레리)이었다.

드가에게는 말 없는 몸짓에 대한 기이한 감수성이 있었다. 그는 특수한 ‘여성적 동물’을 재구성했다. 춤의 노예(무희) 풀의 노예(세탁부) 인도(人道)의 노예(창녀)….

실내화를 고쳐 맨다든지, 내의에 다리미질을 한다든지 형태가 허물어진 그 육체들은, 살아 있는 존재의 찡그림이었다.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 그에게 예술은 보여진 것을 체험하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자연의 복사(複寫)가 아닌, ‘자연에 덧붙이는’ 행위였다.

그는 끈질기게 형태의 비밀을 추궁했다. 한 자세, 한 동작의 순간적 양상이 지닌 영원한 리듬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의 파스텔은 ‘색채의 직물(織物)’을 지어낸다.

언제나 혼자였던 드가. 그는 오로지 예술의 명령에만 복종하고자 했다. 자신에게서 얻어내기 가장 까다로운 것 외에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성공을 위해 타협하는 예술가를 보면 “기차 시간을 알고 있는 은둔자”라고 비웃었다.

그는 너무 오래 살았던가. 시력을 잃은 뒤에야 83세에 죽었으니 말년에 이르러 작업은 불가능해진다. 그의 생존의 이유는 그가 죽기 전에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의 손은 계속 형태를 찾았다. 대상을 더듬었다. 촉각은 점점 지배적이 되어 갔고 마침내 조각에서 생애의 걸작을 빚어내기에 이른다.

드가, 그의 생은 예술을 위한 방편(方便)이었던 거다.

이기우 문화전문 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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