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동안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그 평화도 지겨운 모양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누려온 평화와 번영도, 이를 보장해 온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최근 어느 대학교의 강모 교수가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6·25전쟁은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자 내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테고 우리가 실제 겪었던 그런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강 교수가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에서 취하고 있는 입장이 어떤 것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첫째, 이는 이 세상에서 오직 북한 선전매체나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존재이유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4조는 ‘자유민주주의적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국군에게는 그 대한민국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할 것을 사명으로 부여하고 있다. 이 의무의 수행을 위해 우리 국군은 3년간의 6·25전쟁을 치르면서 13만7800여 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62만1000여 명의 인적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도 미군 전사자 3만7000여 명을 포함하여 부상, 실종, 포로 등 모두 15만4000여 명의 인적 피해를 보았다. 강 교수는 무슨 자격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 국군과 유엔군 장병의 이런 심대한 희생을 이렇게 모욕적으로 짓밟을 수 있는가?
둘째, 강 교수의 통일지상주의적 견해는 이제는 선전선동 목적 외에는 쓸모가 없어진 낡은 생각이다. 통일의 역사적 의미를 내세우기에 앞서 우리 민족 모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통일이어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굳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내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겨레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통일을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 외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셋째, 강 교수는 6·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고, ‘약 400만 명’의 인명 희생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전쟁개입을 비난하고 있다. 미국의 개입으로 한반도 공산화통일이 좌절된 것을 통분해 하는 것 같다. 강 교수에게 되묻고 싶다. 만일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북진통일이 성공해서 지금쯤은 ‘7000만의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 인권 등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동북아의 강국으로, 또 세계 상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 있지 않을까. 그 반대로 공산화 통일이 됐다면, 지금 우리도 식량을 구걸하는 처지가 됐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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