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盧대통령 ‘聯政 집념’ 버리시오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與小野大)는 ‘비정상적인 정치구도’라고 한다. 이걸 깨지 않으면 정치를 잘할 수 없고 정치가 잘 안되면 경제도 안 풀린다, 따라서 자신은 상징적인 대통령만 해도 좋으니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져가라, 대신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정권까지 내놓겠다고 하니 대단한 ‘자기희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말한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명분도 지역주의 극복이었고 이는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며 역사에 대한 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지금 과거의 ‘비주류 정치인’이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자기희생이니, 진정성이니 하며 국민의 동의(同意)도 없이 제멋대로 권력을 분양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권력 남용이자 헌법 정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여소야대 탓을 하려면 어쩌다가 1년여 만에 여대야소(與大野小)가 다시 여소야대로 됐는지, 그것부터 반성하는 것이 순서다. 지난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981년 11대 총선 이후 23년 만에 원내 과반의석(152석)을 차지했다. ‘탄핵 역풍(逆風)’의 거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의 생각대로라면 모처럼 ‘정상적인 정치구도’가 이뤄진 셈이다.

그렇다면 국정도 정상궤도 위에 올려놓았어야 했다. 국민의 절대적 관심사인 민생 경제에 주력해야 했다. 진보-보수의 낡은 대립 틀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조용한 개혁’을 해야 했다.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설득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노 정권은 그러지 않았다. 독선과 오만에 빠진 채 여당 의원들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혼선과 태만, 무능’을 드러냈을 뿐이다. 지난 재·보선의 참패로 여소야대가 된 것은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여소야대라고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엄살 떨 일도 아니다. 열린우리당 146석에 야당은 모두 합해봐야 148석이다. 한나라당(125석)은 민주당(10석), 민주노동당(10석), 자민련(3석)에 무소속(5석)까지 끌어들여야 과반이 될 수 있다. 민주당, 민노당이 한나라당과 쉽게 손잡을 리 없으니 그것도 계산상으로만 가능한 얘기다. 반면에 지난번 국방부장관 해임안 처리에서 보았듯이 열린우리당은 민노당이나 민주당 어느 한쪽하고만 손을 잡아도 과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여소야대 타령인가.

더구나 여소야대는 엄연한 민의(民意)의 반영이다. 노 대통령은 정권을 내놓을 테니 한나라당은 지역주의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영남 텃밭’ 때문에 선거 민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게 요점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당장 ‘호남 몰표’는 괜찮다는 것이냐는 삿대질이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타적 맹목적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그로 인해 왜곡된 민의가 나라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30년 넘게 누적돼 온 지역주의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하물며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한다’는,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황당한 방식으로는 더욱 심각한 민의의 왜곡을 낳을 수 있다.

선거제도 개정은 표의 대표성과 등가성(等價性)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여야가 협의할 문제다. 대통령이 나서 권력 줄 테니 연정(聯政)하자, 대신 선거제도 바꾸라고 난리칠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에게 말한다. 국민은 그들이 5년 동안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이 지역구도를 타파한답시고 야당에 덜컥 정권을 내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분별없고 무책임한 행동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헛된 집념은 버리고 이제부터라도 바른 국정을 끌어가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국민의 실망과 짜증이 분노로 바뀌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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