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어제 긴급 기자회견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통해 정치를 재건축하겠다’는 자신의 구상은 “어느 때인가 국민이 동의하고, 어떤 정치인도 거역할 수 없는 공론이 될 것”이라면서 “이 제안을 귀담아듣지 않고 거역하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확신이 극단에 이르고 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발언이다.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 심지어는 협박으로 받아들일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면 여야(與野) 간의 논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국민을 향해 설득 경쟁을 해 나가면 될 일이다. 2008년 총선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런데도 왜 지금 이 문제를 들고 나와 경제난과 생활고에 지친 국민을 더 힘들게 하는가. 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연정 제안의 배경을 거듭 설명했다. 그러나 선거법을 고치는 문제 하나 때문에 위헌적인 정권교체 구상까지 밝혔다가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나는 정치인의) 숫자가 아니라 역사의 대세(大勢)를 가지고 정치를 한다”고 강변했다. 민의(民意)를 거스르는 것이 역사의 대세란 말인가.
노 대통령은 국민이 자신을 뽑은 것은 “외교나 경제를 잘 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정경유착과 지역구도, 부정부패 해소라는 개혁을 원칙대로 밀고 갈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림살이 업적에 대해서는, 이전 대통령에 비해 어디를 잘못했는지 토론해 보자”고도 했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외교와 경제, 개혁을 나눠서 위임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경제와 외교의 실패를 자인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상 최저라는 20%대의 지지율을 보면서도 ‘살림살이 업적을 토론하자’는 말이 나오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행태는 한술 더 뜬다. 대다수 여론은 물론이고 친노(親盧) 매체들까지도 반대하는 연정 제의에 대해 ‘고뇌에 찬 결단’이라며 연일 지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연정에 반대하는 의원과 당원들을 찬성 쪽으로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러니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보다 더한 ‘제왕(帝王)의 칙령’이 되고 있다는 자조(自嘲)마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집권 반환점을 목전에 둔 참여정부의 모습이다. 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눈에 뭔가가 씌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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