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노무현 對 노무현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1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의 하프라인을 넘어서는 달이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그도 힘겨웠겠지만 국민도 힘들었다.

2년 반의 국가경영에 대한 자평과 국민의 평가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임기 전반기에 나라 살림살이에 전력을 다했다”면서 “어떤 대통령에 비해 어디를 잘못했는지 토론해 보자”고 했다.

다음 날 한겨레신문과 리서치플러스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답은 26.6%였다. 5월보다 11%포인트 떨어졌다. 지난달 말 문화일보와 한국신용정보의 설문 조사에 응한 경제 전문가 83명 가운데 85%는 ‘현 경제 상황은 위기’라는 데 공감했다. 10명 중 6명은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부동산대책을 꼽았다. 61%는 부동산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관성 결여와 시장기능 무시’를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노 대통령이 “권력을 넘길 테니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한나라당에 제의하자 조갑제 월간조선 전 대표는 “국민이 대통령 비(非)정상사태를 선포할 때”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정창인 기획위원은 “대통령의 편집증적(偏執症的)인 정책의 배경이 판단력 등 정신적 장애 때문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썼다. 두 사람은 대통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논자다.

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간부를 지낸 A 변호사는 며칠 전 사석에서 “이제 그에 대해 희망을 버렸다”고 했다. 대통령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 유임에 매달리던 6월 하순, 열린우리당 B 의원은 지인들에게 “치졸한 리더십이 문제”라면서 “그런 리더십 밑에서는 좋은 후계자가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높은 산 정상에서는 마을이 잘 안 보인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C 씨는 “관료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보고(報告)는 어떻게 해서라도 분칠한다”고 했다. 역시 수석비서관을 지낸 D 씨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현실적인 일은 하찮게 보고 세상만사를 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첫해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위험한 생각이고 불길한 발언이었다. 두 발을 땅에 디딘 눈높이에서 겸허하게 민의(民意)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사태를 일방적이고 아전인수식으로 보기 쉽다. 그런데서 심각한 허(虛)가 생기는 법이다. 국민이 다 알아주지 않아 야속하더라도 ‘심판은 국민 몫’임을 인정하고 비판과 견제를 받아들여야 결정적인 오판(誤判)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그의 좌우명이라는 ‘자신에겐 엄하고 타인에겐 너그럽게’를 떠올려 봄 직하다.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도 여태처럼 민생의 실상과 동떨어진 ‘후한 자평’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잘못된 현실 인식’ 때문만으로도 국민의 신뢰를 더 잃기 쉽다. 더구나 진단이 틀리면 바른 처방을 낼 수 없으니 실패의 만회가 어려워질 것이다. 어차피 레임덕(권력누수)도 피할 수 없을 테니 세상을 겸허하게 보고 안전 운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나라당도, 다른 야당도, 그리고 다수 국민도 냉담한 대연정(大聯政) 같은 것을 밀어붙이려고 할수록 힘이 더 빨리 빠질 가능성이 있다. 국정 운영에 있어서 정부의 경기력(競技力)이 모자라면 이를 보강해야지, 갑자기 룰을 바꾸자고 하면 ‘연장 나무라는 목수’ 취급 받기 십상이다.

노 대통령은 “나의 제안을 귀담아듣지 않고 거역하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가 어떤 자세와 심리 상태로 국정에 임하고 있는지를 상상하게 하는 발언이다. 그리고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게’ 된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민성(民聲)을 귀담아듣고 ‘거역이 아니라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정치의 틀과 과거사를 바로잡아야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지론이지만 무리가 따르면 정치적 혼란과 경제의 불확실성만 증폭될 뿐이다. 이래서는 임기 후반부도 기대할 것이 없고 ‘길기만 한’ 2년 반이 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대통령이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성패와 국운(國運)은 ‘노무현 대 노무현’의 승부에 크게 달려 있는 셈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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