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컬러스 크리스토프]짓밟힌 그녀, 희망을 말하다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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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는 두 시간에 한 번꼴로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 파키스탄에서 강간은 그 자체로 공포의 시작에 불과하다. 성폭행 피해자는 종종 자살로써 속죄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곤 한다. 가해자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데도 말이다.

지난 칼럼(본보 3일자 A27면 ‘세계의 눈’)에서 나는 파키스탄 당국이 샤지아 할리드 박사가 성폭행을 당한 뒤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그들은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마취약을 먹이고 정신병원에 감금했다. 강간범이 현지에 주둔 중인 육군 대위라는 소문이 떠돌자 주민들은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런 골칫거리를 아예 없애기로 작정했다. 정부 당국은 2개월 넘게 샤지아 박사와 그의 남편 할리드 아만 씨에 대해 가택연금 조치를 취했다. 관리들은 샤지아 박사가 행실이 나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매춘부였을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굴욕감을 참지 못한 샤지아 박사는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자 남편과 아들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그러는 동안 집안 어른인 할리드 씨의 할아버지는 샤지아 박사가 ‘카리(kari·가문의 불명예)’라며 그녀를 죽이거나 이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할리드 씨는 “할아버지는 아내를 죽이려고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며 “아내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무샤라프 장군은 샤지아 박사 부부가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가려는 것을 알고는 화를 냈다. 파키스탄 정부 당국은 이들에게 국외 추방명령을 내렸다. 만약 파키스탄을 떠나지 않는다면 정부 요원에 의해 살해될 것이며, 아무도 시신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샤지아 박사가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관리들은 시간이 없다며 더 이상 지체하면 살해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관리들은 정부의 도움에 사의를 표시하는 샤지아 박사의 모습을 비디오 화면에 담았다. 관리들은 만약 그녀가 언론인이나 인권단체 사람을 만난다면 그녀뿐 아니라 파키스탄에 남아 있는 친척들의 신상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샤지아 박사는 “가족의 안전이 걱정되고 두렵기도 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하게 됐다”며 “가족의 운명을 신의 손에 맡겼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관리들은 샤지아 박사와 할리드 씨를 런던행 비행기에 밀어 넣었다. 부부는 런던에 도착한 뒤 친지들이 있는 캐나다에 망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캐나다 관리들은 그들이 영국에서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이유로 망명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런던의 은신처에서 과거의 악몽을 지우고 있는 샤지아 박사는 언젠가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성폭행당하고 얻어맞는 여성들을 돌보는 병원을 세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샤지아 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할리드는 나를 지지해 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순수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한밤중에도 벌떡 일어나곤 한다”며 “나와 남편의 인생은 엉망이 됐다. 아들도 보지 못한다. 차라리 그때 죽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샤지아 박사의 시련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개발도상국가 지역 상당수 여인들이 겪는 삶의 고통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변화와 개혁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순수함을 보여 준 샤지아 박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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