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일부 심부름센터가 신형 도청 장비로 프라이버시를 파고드는 새로운 수법의 범죄적 영업을 일삼아 그 피해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올 2월 보도된 신생아 모자 납치 살해 사건을 저지른 것도 심부름센터였고, 지난해 총선 때 전남 해남군에서 상대 진영에 고성능 도청기를 설치해 정보를 빼낸 것도 심부름센터였다. 배우자의 사생활을 조사해 준다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생활정보지에 광고까지 하고 대화 녹음, 통화 조회를 해 주는 범법 업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 수준은 그 나라의 문명화, 선진화, 삶의 질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미국 워싱턴 주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딸의 전화를 엿들은 어머니의 행위에 대해 ‘보호받아야 될 사적 권리를 침해한’ 범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상은 헌법과 법률에 담긴 프라이버시 보호 규정이 무색할 정도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헌법 17조)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헌법 18조) 등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한낱 심부름센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신용정보이용에 관한 법률, 형법 등 각종 제도적 장치도 무력하기 짝이 없다.
사적 도청 범죄와 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조장하는 기기(機器)의 유통 등을 팔짱 끼고 구경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선 통신비밀 침해 범죄의 온상인 심부름센터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 행정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업종’이라는 점이 악용되고 있는 만큼 등록 요건 및 단속과 처벌 근거 강화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개인간의 불법적인 도청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 기기의 유통 난맥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처가 요망된다.
사생활 영역이 무방비 상태로 침해되고 있는 데 따른 사회적 파장은 일파만파다. 이런 상황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기술이 진보하고 윤리의식이 흔들릴수록 새로운 차원의 사생활 보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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