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출신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종하 전 의원은 1995년 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거엔 부산 출신인 아버지가 롯데 팬이면 아들도 롯데 팬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저마다 취향에 따라 좋아할 팀을 선택한다. 지역감정이 엷어질 것이라는 분명한 징후다.” 10년이 흐른 지금, 적어도 야구에선 그의 예측이 맞았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좋아하는 팀이 다른 현상은 이미 보편화됐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게 무릇 이렇다. 어떤 거대 담론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자잘한 일상(日常) 속에 치유의 실마리가 있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생각이다.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지역감정 하면 으레 “지역과 연계된 기득권 세력이 한국사회를 분할 지배하기 위해 동원한 이데올로기”라는 주장부터 펴는 일단의 지식인들에게 이젠 질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등장으로 정치지형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같은 노래만 부르니 식상할밖에. 그보다는 부닥치고 깨지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지역감정 해소의 희망을 얘기하는 편이 훨씬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감정 해소를 집권 후반기의 최우선 국정목표로 내걸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선거제도 바꾸기와 연정(聯政)을 제안한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아무려면 선거제도 하나 바꾼다고 지역감정이라는 고질병이 하루아침에 낫겠는가. 정략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대통령의 연정 구상은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수도 많고 파워도 강한 잠재적 대권주자들을 연정이라는 틀 속에 묶어두기 위한 고육책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레임덕(권력누수)이 정말 빨리 올 것이라는 초조감 때문일까.
아무튼 지역감정은 제도만으로 해소될 일은 아니다. 칼로 자른다고 잘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국방연구원이 2003년 12월 병사 5550명을 상대로 ‘지역에 의한 차별 대우 인식’을 조사한 자료를 한 부 얻었다.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병사들에게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50.8%가 ‘전혀 없다’, 35.3%가 ‘거의 없다’고 답했다. ‘자주 있다’는 1.6%, ‘간혹 있다’는 12.3%였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90%에 가까운 병사들이 지역감정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군에 갔던 사람들은 다 겪었겠지만 전우(戰友)가 어디 지역에 따라 나뉘던가. 문제는 이런 의식이 부대 문을 나서면서 바뀐다는 데 있다. 본인도 모르게 ‘지역’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그 경로를 알고 차단하는 것이 지역감정 치유에 한 실마리는 될 것이다. 군의 정훈교육 과정에 누구나 공감할 지역감정 해소 프로그램을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군에서 대학 학점을 따게 하는 것보다 더 급하고 의미 있는 일이 이런 게 아니겠는가. 눈을 돌리면 해야 할 일은 많다.
다시 야구로 돌아가자. 지난달 기아의 감독대행이 된 서정환 씨 얘기를 놓칠 뻔했다. 서 씨는 경북고를 나왔고 1998∼2000년 삼성 감독을 한 정통 TK 출신이다. 프로야구 선수 중 최초로 호남 팀에 트레이드된 영남 선수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그가 광주일고를 나온 선 감독과 포스트시즌에서 맞붙게 되기를 박 씨는 간절히 빌고 있다.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고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감정은 ‘혁파’되는 것이 아니라 ‘흡수’되는 것이다. 공연히 잘 들지도 않는 큰 칼을 휘두를 생각은 말았으면 한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