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금강산에 다녀온 한 재계 인사는 김 부회장의 개인 비리 의혹이 본보 보도로 처음 알려진 8일 이렇게 털어놨다. 북한에서 본 김 부회장 부부의 모습이 마치 중세 유럽의 ‘영주(領主)’를 연상시키더라는 것이다.
현대그룹 총수인 현정은(玄貞恩) 회장은 김 부회장 문제를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내부감사를 통해 김 부회장의 비리를 조사한 것도 금강산 사업이 마치 그의 개인 사업처럼 비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그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 창업주가 처음 방북한 1989년 이후 16년간 김 부회장은 대북(對北)사업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해왔다.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나 남편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끄는 현 회장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 국방위원장과 찍은 사진 한 장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북한 사회에서 이런 김 부회장의 위상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개인적인 대북 네트워크 때문에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할 때는 막후에서 준비작업을 맡기도 했다.
김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 북한 측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현대그룹과 한국의 대북사업이 얼마나 한 개인에게 의존해 왔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현대아산 실무자들은 “의리와 인정이 중시되는 대북사업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대북사업에서 한 개인의 지나친 독주는 결국 비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보여 줬다.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9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대북 관광사업은 현대라는 개별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하물며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는 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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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리 파문은 대북사업이 개인의 수완이 아니라 ‘투명한 시스템’에 의해 추진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민족의 미래와 관련된 사업이 한두 사람의 진퇴에 영향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박중현 경제부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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