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장’의 악바리 정신이 최대 무기=미국에 진출한 한국 여자골퍼에겐 포기란 없다. 든든한 스폰서가 있는 몇 명의 선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른바 ‘소녀가장’이기 때문이다. 주니어시절부터 적게 잡아도 수억 원씩 골프비용으로 투자됐기 때문에 다른 가족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뛴다.
원형중(이화여대) 교수는 “가족에 대한 보상심리는 부담감이기도 하지만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선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되는데 나라고 못할까’라는 오기가 대단하다. 국내 무대 시절 박세리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던 강수연은 대회 중에도 해가 질 때까지 매일 서너 시간씩 퍼팅 연습을 하며 ‘와신상담’해 이번 대회에서 신들린 듯한 퍼팅 실력을 발휘했다. 올 캐나다여자오픈에서 첫 승을 거둔 이미나(24)는 미국 2부투어 시절 호텔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아버지와 함께 실제 칼을 입에 물고 우승 의지를 다져 감격적인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코리안 롱런’은 계속될 것인가=강수연을 포함해 올 시즌 한국선수 5명이 거둔 5승(메이저 2승 포함)은 모두 첫 우승이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은 모두가 이미 국내무대에서 검증된 우승후보다. 1988년 구옥희에게서 시작된 한국선수의 LPGA투어 우승 계보는 계속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적 ‘롱런’ 가능성은 그리 밝지 않다. 박세리가 지독한 슬럼프에 빠진 것은 대표적인 예. 전문가들은 “‘골프 치는 기계’는 한계가 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헤쳐 나오기가 쉽지 않다”며 공부를 전폐하다시피 한 국내 주니어골프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서양 여자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경기 자체를 즐기는 플레이를 해 온 반면 한국 선수들은 우승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오면 조급해지고 슬럼프에 빠지기 쉬운 점도 지적되고 있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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