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도 정부 못지않게 돈 쓸 곳 많다

  • 입력 2005년 9월 9일 0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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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내년에 221조 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올해보다 6.5%(13조2000억 원) 늘어난 살림규모다. 세금으로는 부족해서 9조 원 규모의 적자 국채까지 발행하기로 했다. 성장과 분배를 개선하고, 자주국방과 지역균형발전까지 하려면 씀씀이를 줄일 재간이 없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깎을 예산의 조목을 좀 정해 달라”며 감세(減稅)를 거부했다. 정부는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겠다는 얘기다.

국민은 세금 내고 나랏빚까지 갚느라 식은 땀이 날 지경이다. 4인 가족 기준의 통계를 보자. 국민의 세금부담액은 2002년 1136만 원에서 올해 1360만 원으로 늘었다. 세금에다 국민연금보험료와 건강보험료까지 합한 국민부담금은 올해 1740만 원에 달한다. 국세(國稅) 부담만 올해 1035만 원에서 내년에 1140만 원으로 늘어난다니 전체 세금과 국민 부담금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다 2036만 원에서 23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나랏빚도 국민 몫이다.

먹는 것 말고는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게 요즘 국민의 가계부(家計簿) 내용이다. 통계청 2분기 가계수지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분기 293만 원에서 285만 원으로 줄었다. 소비지출도 212만 원에서 194만 원으로 감소했다. 교육 전기 수도 보건의료 교통통신 등 웬만한 지출은 다 줄었다. 수돗물을 아껴 쓰고 병원 가야 할 병도 참는다. 세금이 더 늘어나면 마른 수건을 더 쥐어짤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할 일은 하는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한다. 조직은 늘었지만 낭비 요소는 줄였다”고 주장했다. 숱한 예산낭비 사례를 목격하고 있는 국민으로선 대통령의 말이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감사원과 시민단체가 잇따라 적발한 예산낭비는 뭔가. 장차관급 22명을 늘리고 대통령 직속 국정자문위원회 12개를 신설해서 정부 효율이 얼마나 개선됐나.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 민간부문이 위축되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 삶의 질도 떨어진다. 이는 참여정부 2년 반 동안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다. 자녀 교육비에다가 부모님 용돈까지 줄이는 국민의 저린 마음을 어느 정도나마 헤아리는 정부라면 씀씀이를 줄여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늉이라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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