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력기금으로 조성된 금강산 관광사업비 중 일부를 김 부회장이 비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밝혀지자 통일부는 “한국관광공사가 기금에서 대출 받아 공사의 대가로 현대아산에 지불한 순간 그 돈은 기금이 아니며 기업 내부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금은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돈이므로 투명하고 효율적인 기금 운용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정부에 있다. 따라서 최근 남북협력기금의 운용과 관련된 의구심에 대해 정부는 진솔한 자세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운용상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을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해야 한다. 남북협력기금에 대한 의구심이 국민적 의혹으로 비화되는 경우 남북 교류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은 5조 원 규모로 그동안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에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기금의 운용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이 일회성 행사 지원에 많이 치중되어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 경제 공동체 실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남북경제협력 지원에는 인색했다는 점이 우선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동안 사용된 남북협력기금 4조4600억 원 중 경협에 사용된 기금은 10%도 되지 않는다. 대신 기금은 주로 무상 지원 분야에 집중돼 왔다. 물론 기금의 목적과 성격상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될 수 있으면 상환이 가능한 유상 지원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부담을 감안할 때 좀 더 효율적인 운용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현재 남북협력기금은 교류 행사, 식량 지원 및 경수로 사업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지원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 때문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이나 경협 사업에 대한 관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앞으로 핵문제가 해결되는 경우 대규모 경협 사업들이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기금 사용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별도의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민의 조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문 개발 금융기관들의 자금 조달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금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김 부회장과 정부는 물론이지만 현대아산도 반성해야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대북 사업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남북협력기금의 ‘투명성 확보’다. ‘검은 거래’의 냄새가 나는 곳에 나랏돈을 더 넣기 전에 내부 통제와 관리를 강화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김 부회장에 대한 인사 조치로 불거진 논란을 끝내야 할 시점이다. 대신 ‘통일 종자돈’이 더는 ‘개인 쌈짓돈’처럼 쓰이지 않도록 ‘제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대북 사업이 앞으로도 시스템이 아니라 몇몇 개인을 중심으로 밀실에서 이루어진다면 비슷한 의혹과 비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북 퍼주기’ 비판도 잦아들기 힘들다. 다행히 최근 남북관계는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당국 간 정례 대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경협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도 정비돼 가고 있다. 금강산 관광은 100만 명을 돌파했고 개성공단에서는 수천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우리 기업인 및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남북협력 제도화’의 계기로 승화될 수 있다면 오히려 교류 사업의 정상화는 물론 이를 통해 남북관계의 한 단계 도약과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았던가.
이상만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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