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위장결혼식’은 10·26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 처음으로 재야인사와 학생들이 모인 시국사건이었다. 당시 계엄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집회를 열 방법은 결혼식밖에 없었다. 홍 씨가 신랑 역할을 자청했다. 정민 양은 민주화 인사들이 간절히 바랐던 민정(民政)을 뒤집어 붙인 가상의 신부였다. 현장에서 연행돼 옥고를 치렀던 그가 독신으로 지내다 5일 세상을 떠났다. 53세, 아직은 젊은 나이. 여동생은 “오빠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인(故人)과 함께 감옥생활을 한 이가 지금 국무총리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불렀던 이들 상당수가 참여정부에 참여할 만큼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나 고인이 떠난 다음날 이정복 서울대 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현재의 정치과정은 군사독재시대와도 어느 면에서는 유사하다”고 했다.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고 나니 과거의 타도대상이었던 군사독재정권을 닮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때 그 ‘민주화 운동’은 무엇을 위한 운동이었단 말인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1인 1표를 찍는 참여민주주의만 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으로 믿는다면 오산이다. 하물며 군사독재정권과 유사하다는 민주화, 굶어죽고 탈출하다 죽고 고문당해 죽는 북한 인권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참여정부라면 심각한 문제다. 북한처럼 되자는 ‘위장 민주화운동’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삼가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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