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충식]김구 이순신과 국회의원 101명

  • 입력 2005년 10월 12일 03시 10분


국회의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일까?

단연 백범 김구 선생이다. 17대 의원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41명, 한나라당의 26명, 민주당의 4명, 자민련의 2명, 무소속 1명 등 모두 74명이 백범을 존경한다고 꼽고 있다. 필자가 동아일보 지식정보센터에 의뢰해서 의원들이 적어 넣은 ‘존경하는 인물’을 분석해 본 결과다.

백범 다음으로 누가 존경받을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한나라당의 21명, 열린우리당의 7명, 무소속 2명 등 모두 30명이 충무공을 적고 있다. 그 뒤로 안창호 정약용 링컨 간디 문익환 장준하 세종대왕이 이어진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백범을 더 흠모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비교적 충무공을 좋아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백범이 독립 ‘운동권’을 대표하는 항일투사, 충무공이 ‘군 출신’ 무인(武人)이어서일까?

어쨌거나 이 나라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넘는 수가 백범과 충무공을 존경한다는 것은 믿음직스러운 일이다. 두 분의 공통점은 구국(救國)과 헌신(獻身)이다. 민족 존망의 위기 때 몸을 던진 그런 두 위인(偉人)을 꼽고 섬긴다는 자세가 마음 든든하다.

더러 “요즘 의원들이 힘든 민생에 무슨 기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국정감사 시즌에 폭탄주 소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웰빙족(族)’소리도 나오는 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이 세계적인 펀드매니저, 영화배우나 골프선수를 꼽지 않고 백범 아니면 충무공을 꼽다니, 여간 고맙지 않다.

적어도 ‘백범일지’라도 읽었을 터이니 그 정성이 가상하다.

백범은 나이 스무 살 때 ‘벼랑에서 아등바등하지 않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하는 기개를 실천했다. 일본의 국모(國母) 시해에 분노하여 일본군 장교를 손수 처단했다. 그는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내 육신의 생명을 앗아갈지언정, 나의 정성은 불가탈(不可奪)이다’고 외치며 견뎌 냈다.

백범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 도산 안창호 내무총장에게 파수(문지기)를 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형무소에 갇혀, 제가 훗날 독립이 되거든 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백범(白凡)’이라는 별호도 지었습니다.” 그가 각오를 말하자, 안창호는 경무국장을 시켰다. 백범은 “제가 순사 자격도 못 미치는데 경무국장은 웬…”이라며 사양했다. 그러나 도산은 “혁명기의 인재는 그 정신이 중요하다”며 경무국장으로 결정해 버렸다.

충무공 이순신은 또 어떤 분인가?

영국의 해군 제독 밸러드가 “영국의 해전 영웅 넬슨 제독에 비교할 만한 동양의 위대한 해군 사령관이 바로 이순신”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는 1921년 펴낸 저서에 이순신 연구를 상당 부분 할애하며 충무공의 비상한 전략과 지휘 통솔력, 그리고 불굴의 정신력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 제독 사토 데쓰타로도 ‘적국(敵國)’의 충무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순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적(침략)을 좌절시켰다. 바다를 제압하는 것이 국방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한 명장이다. 모함을 당하며 백의종군(白衣從軍)하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고통을 달게 받았으니, 고매한 인격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장부로 태어나서 나라에 쓰이게 되면 죽음으로 충성을 다할 것이요, 버려지면 들에서 밭을 가는 것으로 족하다. 아첨하여 영화(榮華)를 꾀하는 것은 나에게 큰 수치다’고 말하였다.”

백범과 충무공의 살신성인(殺身成仁) 겸양궁행(謙讓躬行) 솔선수범(率先垂範) 필사즉생(必死則生) 백의종군의 정신. 적어도 국민이 그런 정치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의원들은 알고 있기에 두 분을 적어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존경 따로, 행실 따로’가 ‘체감 정치’인 것을….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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