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남훈]‘경제교과서 시장’ 經濟원리 도입을

  • 입력 2005년 10월 17일 03시 10분


우리 사회에 반기업, 반시장경제적 정서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전 한 다국적 컨설팅 회사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의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세계 22개국 중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서는 ‘부자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응답이 70.9%나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각계에서는 잘못된 초중고교 경제 교육이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경제 교과서의 내용 자체가 편향적인 가치관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8명의 경제학 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이 114종에 달하는 초중고교 경제 관련 교과서를 검토한 결과 현실은 좀 더 충격적이다. 내용의 편향성도 문제지만 그보다 교과서 전체가 부적절한 서술, 주관적 내용과 오류투성이였던 것이다. 이번에 수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 내용은 446곳에 이르지만 짧았던 연구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문제점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편향적인 서술 역시 의도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들의 인식 부족과 부주의로 인한 것이 많았다. 예컨대 과점기업들은 언제나 담합을 통해 가격을 인상한다든지,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춰야만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든지 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이거나 이미 한물 간 이론이다. 기업들의 회계부정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2001년의 신문 기사를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마치 지금도 분식회계가 만연한 것처럼 기술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발견된 초중고교 경제 관련 교과서의 문제점들은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 2006학년도부터 상당수 수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못된다. 땜질식 수정만으로 고쳐지기에는 현행 교과서들에 나타난 문제의 원인이 깊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 교과서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연구 과정에서 만나게 된 한 교과서 저자는 집필 과정의 총체적 문제점을 호소하였다. 현행 제도는 형식상으로는 검정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교육부가 소단원 제목과 내용요소에 이르기까지 교과 과정을 일일이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고 5종의 교과서가 있다 해도 천편일률적이 된다. 학계에서 존경받는 경제학자 한 분이 고교 경제 교과서를 쓰려다 교육부의 검정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포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더 큰 문제는 교육 과정 개발에 경제학 전공자가 참여하지 않아서 지나치게 윤리지향적인 내용 위주로 구성되거나, 화폐금융과 재무관리 등 꼭 필요한 내용은 빠지는 등 불합리한 구성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의 가격이 워낙 낮게 책정되어 저자와 출판사 모두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기대할 수 없고 집필 기간이 짧아 품질이 낮아진다는 지적도 있다.

필자가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경제 교과서 시장에도 경제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요즘 대학에서 많이 선택되는 경제원론 교과서를 보면 이번에 검토한 어떤 고교 교과서보다 정확하고 수준이 월등히 높으면서도 오히려 더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다. 이처럼 시장원리는 우수한 교과서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수요자인 교사와 학생의 선택을 통해 품질 좋은 교과서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교육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대신 더 많은 교과서가 시장에 진입하여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인센티브와 경쟁을 통해 바람직한 결과를 달성하는 과정이 바로 경제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하는 시장경제의 원리이기도 하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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