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事-士-師-人-者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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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직업이나 신분의 명칭에는 나름대로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판검사(判檢事), 변호사(辯護士), 의사(醫師)처럼 이른바 ‘사’ 자가 붙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지만 한자로는 각기 다른 ‘사’ 자를 쓴다. 판검사는 ‘일 사(事)’ 자를 쓰지만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쓴다. 왜 그럴까.

겸손한 인품으로 검찰 안팎에서 존경을 받았던 전직 검찰총장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검사나 판사는 맡은 일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직무 외에 다른 것은 고려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일 사(事)’를 쓰는 것 같다. 변호사의 경우엔 법률의 해석에 있어서도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다소나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고, 여러모로 여유 있게 살 수 있어 ‘선비 사(士)’를 쓰는 게 아닐까.”

나름대로 일리 있는 해석인 듯하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약사 등에게 ‘스승 사(師)’를 쓰는 것도 납득이 간다.

흥미로운 것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에겐 ‘사람 인(人)’을 쓴다는 점이다. 종교인, 예술인, 체육인 등 ‘사람 인’을 쓰는 직종은 대체로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 재능에 관계되는 일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정치도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질 중 하나다.

사람을 나누는 기준으로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이란 것이 있다. 정치인은 일단 이 중 재주가 뛰어난 ‘난사람’과 식견이 넓은 ‘든사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에선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태어나야 국회의원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정치인들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을 보면 사람됨이 훌륭한 ‘된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물론 정치인(politician)도 사리와 당략을 멀리하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한 단계 격이 높은 정치가(statesman)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정말 국리민복만을 생각하는 훌륭한 정치가를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 아닐까 하는 회의를 떨치기 어렵다.

기자(記者)한테는 ‘놈 자(者)’가 붙는다. 과학자 기술자 성직자처럼 ‘자(者)’가 붙는 직업명엔 자신을 낮추고 사회를 위해 묵묵히 한길을 걸으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리라. 특히 기자는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원칙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취재원과의 친소(親疏)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달리 쓸 수 없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적당히 타협하고 봐줄 수 없기 때문에 비판적 기사로 인해 심사가 사나워진 사람들에게 기자는 어쩔 수 없이 ‘쓰는 놈’이기 마련이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의 사법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된 여권과 검찰의 갈등 양상을 바라보며 ‘원칙’의 중요함을 되새긴다. 국가의 정체성 수호에 대한 검찰의 판단 능력과 사법부의 최종 판단 절차, 성숙한 국민의식 등을 두루 고려하고 불필요한 간섭과 상호 불신을 배제했더라면 이렇게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각자 직분에 충실하면 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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