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의원들은 강정구(姜禎求) 교수 사건에 대한 수사권지휘 발동을 문제 삼으며 “노무현 정권은 정체성을 밝혀야 된다”고 공세를 펼쳤고, 국무위원들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색깔론으로 국민을 이간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 의원은 “수구좌파 꼴통인사를 정권차원에서 비호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선 노 정권의 정체성이 좌파인지, 중도인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인지 알고 싶어 한다”며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이 총리는 이날 본회의를 참관한 인도네시아 의원들을 가리키며 “우리가 쓰나미(지진해일)피해를 지원한 나라의 의원들이 보고 계신 자리에서 그런 질문에 답변하는 것 자체가 창피하다”며 “사람이 많이 사는 나라이니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주장들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 총리는 이어 “국가 정체성 문제는 1997년 선거에서 이미 끝났다”며 “그 전부터 여당이 (색깔론을) 활용해 성공했지만 97년에는 실패했다. 국가 정체성 논란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발끈한 안 의원은 “이렇게 오만한 총리의 답변을 듣는 국민들이 얼마나 한심해 할 지 안타깝다. 진지하게 답하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이 총리는 “그 문제에 진지하게 답변하면 국민을 이간시키려는 전술에 말려들어가게 된다. 제가 그럴 정도로 미숙한 총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의원은 이어 ‘차떼기당 논쟁’과 관련해 “(이 총리 생각에) 한나라당이 아직도 나쁜 당인가”라고 따져 물었고, 이 총리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잘라 말했다.
같은 당 권철현(權哲賢) 의원도 이 총리에게 “6.25는 통일전쟁인지, 침략전쟁인지 정부의 입장을 밝혀 달라”고 재차 물었고, 이 총리는 “강 교수의 통일전쟁에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다. 교과서에 남침전쟁이라고 돼 있으며 정부의 공식입장과 같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원론적인 답변이 이어지자 권 의원은 “강 교수 사태에 대한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는 국면전환, 신색깔논쟁, 지지층 결집,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러브콜 등 다목적 카드”라며 “이 총리의 답변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민심이 천심인 것을 명심하라”고 충고했다.
이때 한나라당 의석에선 “총리가 너무 오만한 거 아냐”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유신독재의 부활을 기도한다”며 한나라당의 정체성 시비를 비판했다.
윤호중(尹昊重) 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해 “자유와 인권을 우선시하는 정부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체제를 파괴하고 있다는 독설을 퍼붓고 있다. ‘유신독재’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이명박 시장에게 대선후보 경쟁에서 추월당하자 이념대립을 증폭시켜 보수층을 결집하고 당 장악력을 높이려는 정략”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 총리는 “개인 소견이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의 수구정치세력은 정상적이지 않았다”며 “쿠데타로 집권한 것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통제하려 들고 고문하고 그랬던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 총리는 “저도 민주화운동 한 것뿐인데 4년간 옥고 치르고 5년 동안 수배 돼 집에도 못 들어갔었다”며 “그게 수구세력 본질이다. 이제야 정상적인 보수 세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정배(千正培) 법무장관 역시 “지휘권 행사가 정당했느냐. 사퇴할 의사가 없느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공세에 “수사지휘권 발동은 정당했고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 강변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의 조기 개헌 주장과 관련해 이 총리는 “정부는 개헌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를 하거나 공식 입장이 없다”며 “개인적 견해는 2007년에 가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시기가 서로 조정돼 있지 않아 대체로 2007년, 2008년 선거와 관련해서 개헌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며 “개헌 논의의 시기는 정부에서보다 국회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구민회 동아닷컴 기자 dan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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