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주적 사회질서도 피 흘려 얻은 투쟁의 산물이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 가운데 이처럼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한 나라는 몇 안 된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일이고 우리 모두의 자랑이다. 한때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의 하나로 국력이 욱일승천하기도 했다. 이런 기세를 이어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모두의 소망이지만 전환기의 욕구 분출과 갈등, 분열과 반목을 되풀이함으로써 그 문턱에서 좌절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세대와 가치관의 변화로 주류 세력이 교체되는 전환기에는 과거에 대한 시비나 억눌렸던 욕구가 분출하고, 국가 발전 방향을 놓고서도 상반된 견해가 대립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과도기일수록 각계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고 화합하는 성숙성을 발휘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 사회는 상대방의 변화와 개혁만을 요구하며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질서 확립에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국민의 자유로운 생활과 경제적 번영, 그리고 국가안전의 확보라는 비전을 통해 국민의 화합과 선의의 경쟁을 이끌어 나가야 할 정치세력은 정권의 유지와 쟁취에 눈이 어두워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 번영을 가능케 하는 것은 활력이 넘치는 시장경제임에도 그 부작용만 강조되고 있는 것도 딱하다.
새로운 질서 위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판을 치고 있는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다”거나 “너만 바꾸면 모든 게 다 잘된다”는 흑백논리부터 사라져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꽃이 피면 번영의 열매는 저절로 열린다”는 안이하고 낭만적인 생각도 버려야 한다. 지속적인 번영 없이는 빈부격차를 비롯한 사회문제를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분배 중시 정책이 한계를 드러낸 유럽의 사회적 시장주의에서, 또 도농 간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음에도 초지일관되게 시장경제제도의 확대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중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주화된 질서 위에서 다같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시대적 진운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내다보고 구각을 벗어던져야 한다. 여기엔 너와 나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정치인과 관료 등 영향력이 큰 집단일수록 나보다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먼저 생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실천이 절실하다.
민간 기업인도 투자환경을 탓하기 전에 부가가치 창조에 앞장서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사회와 소비자, 그리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스스로의 권익 확보에만 골몰하고 있는 노동계도 이제는 빛바랜 이념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국가 발전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업이 망하면 노조도 없어진다”는 1960년대 일본의 노동계가 경험했던 전철을 되밟을 필요가 있겠는가?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받으면서 사회갈등이나 부추기고 있는 일부 시민단체(NGO)들도 본래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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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회 각계각층은 누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기 전에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나서고 서로 화합하고 협력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넘치는 선진사회를 기약할 수 있다. 꽃이 핀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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